좋은 저녁입니다. 환희는 기쁨입니다. 강론을 시작하기 전에 묵상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제 기쁨을 느낄까요? 어떤 분은 친구가 공짜로 술을 사줄 때에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기쁠까요? 하하하. 한 자매는 몸매를 이쁘게 가꾸게 도와 주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니까요. 어떤 기쁨이 더 있을까요? 한 남자가 이미 아내가 있는데도 어떤 이쁜 처자가 다가와서 ‘아저씨 우리 행복한 밤을 함께 보내용~’이라고 한다면 그는 기쁨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그 성적 흥분으로 인해서 말이지요. 여러분은 왜 여기 있습니까? 무엇을 찾습니까? 미사에 왜 오신 것일까요? 저희들이 가르치는 환희(기쁨)는 너무나도 다른 것입니다. 행여나 여러분이 아직도 제가 말한 것과 같은 종류의 기쁨을 찾으신다면 잘못 찾아오신 셈입니다. 여기는 여러분이 술에 취하고 돈을 더 벌고 더 이뻐지고 아름다워지거나 더한 성적 흥분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쁨은 꽤나 역설적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가리키며) 여기 우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뭐라구요? 십자가가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지요?”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정신은 흐려져 있고 준비되어 있지 않지요. 아직도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것은 여전히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지요. 한 여인은 얼굴에 짙게 화장을 하면서 거기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그 여인은 영혼을 가꾸기보다 얼굴을 가꾸는 것이지요. 영혼을 가꾸는 것은 사실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얼굴을 열심히 꾸며서 잘생긴 남성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요. 혹은 새로운 물건을 구입해서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기쁨은 여전히 낮은 단계이고 지극히 세속적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인지 깨닫지를 못하는 셈이지요. 복음으로 다시 돌아옵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 15,9) 과연 요즘 세상에 누가 서로 사랑하고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