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에서 중요한 것은 ‘화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화해를 단순히 지은 죄를 뉘우치고 털어놓는 선에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다운 화해의 모습이 아닙니다. 진정한 화해는 ‘회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살면서 누구나 죄를 짓게 됩니다. 죄는 상처이고 구덩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구덩이를 메꾸려고 하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만 메꾸려는 사람은 언젠가는 다시 구덩이를 만들게 됩니다. 참된 화해는 자기 구덩이만 메꾸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타인이 파 놓은 구덩이도 메꾸려는 결심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가가서 소위 고해성사를 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배반했느냐?”
오히려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습니다. 핵심은 단순히 죄를 기워 갚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꾸준히 하느님을 사랑할 정도로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의지가 있고 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 우리의 죄는 우리를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사랑을 향하여 나아가게 도와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지만 그로 인해서 3배의 열심으로, 아니 300배의 열심으로 다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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