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말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말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고 과연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어떤 말을 나의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의향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삐뚤어져 있다면 아무리 좋은 말이 다가와서 물리치게 마련이고, 반대로 전혀 엉뚱한 말을 선호하게 되지요. 사실 사람들이 엇나가는 이유는 대부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돈을 좋아하는데 ‘영적 부유함’에 대해서 말하고 자발적인 가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며, 반대로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참된 가르침을 갈구하는데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른 의향을 지니고 있을 때에는 이미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때부터는 우리 스스로 분별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교묘하게 속이는 자들’이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양의 탈을 쓴 이리들과 같은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진리의 사탕발림을 하고 다가오지만 그 뒤에는 쓴 독을 품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교회라는 어머니입니다. 교회라는 진리의 수호자는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별해 줍니다. 교회가 인정하는 수많은 좋은 저서들은 아마 우리가 평생을 다 읽어도 모두 읽어내지 못할 만큼 방대한 영적 보고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교만’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우리 스스로가 좀 더 특별하고 색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더 특이하고 소위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지요. 그렇게 스스로를 어둠의 유혹에 내어 맡기게 됩니다. 그렇게 얻어만난 ‘색다른’ 가르침은 전혀 색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하니까요. 하느님의 가르침은 고대로부터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유혹하는 자는 이런 가르침에 여러가지 것들을 뒤섞어 놓게 마련입니다. 교회를 의심하게 하고 반항하게 하는 정신을 심는 것이지요. 그렇게 잔뜩 교만해진 정신들은 자기만의 새로운 가르침을 찾았다며 전혀 엉뚱한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무척이나 단순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순진함에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을 신뢰해야 하고 그분이 세우신 교회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어둠의 영은 새끼양이 양 무리에서 떨어지기만을 바랍니다. 그래야 이리떼가 공격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손을 굳게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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