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는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을 여러가지 다른 수단으로 받아들인다. 즉 그것을 말하는 이의 권위로 받아들이거나 비록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체험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진리나 교리들은 때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 바로 이 때에 우리 앞에 도전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는 바로 교회의 권위 때문이다. 교회가 자신이 살고 고백하는 것을 우리는 그 권위를 통해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헌데 이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고 약점을 지닌 이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교회는 거룩하지만 그 구성원들이 모두 거룩하지는 못하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교회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 지도자의 인간됨을 목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이들,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하기까지 가 닿지 않은 이들은 바로 눈 앞에 주어져 있는 롤 모델의 나약함과 부족함에 실망을 하고 자신이 거머쥐어야 할 신앙의 선물 마저도 내던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체험이다. 헌데 이 개인적인 체험에는 위험성이 있으니 바로 내 안에 올바른 분별력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단 맛을 좋아해서 몸에 해로운 음식을 좋다 하고 몸에 유익한 음식은 그 맛 때문에 싫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체험적으로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들은 곧잘 오해되고 우리에게 그릇되이 작용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래서 여러가지 사이비와 이단들이 득실거리는 셈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이 나의 개인의 체험적으로 좋다고 그들을 말하지만 그 자신들의 체험 자체에 오류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해소할 올바른 방법은 무엇일까? 본질에 충실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이 양산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이 나올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