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알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p.291. 말 그대로는 음식을 끊는 것이지만, 그 깊은 의미에는 ‘세상의 즐거움을 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까지 누려오던 세상의 여러가지 즐거움을 내려놓는 것이지요. 그런 세상의 즐거움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육신의 즐거움이겠지요. 무언가 맛있는 걸 먹어서 얻는 즐거움,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해 지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다음으로는 정서적이고 지식적인 즐거움이 있겠지요. 정서적인 즐거움은 화려한 경관을 구경하는 데에서, 재미난 영화를 보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이고 지식적인 즐거움은 몰랐던 정보를 깨닫고 아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단식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에서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즐거움’이지요. 우리는 단식을 하지만 이 마지막 즐거움은 단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즐거움을 만끽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인간존재의 즐거움은 바로 이 영혼의 즐거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혼은 언제 즐거워할까요? 육신에 필요한 영양분이 공급된 때에 육신이 즐거워지듯이 영혼도 영혼에 필요한 것이 공급될 때에 즐거워집니다. 영혼에 필요한 영양분은 바로 ‘사랑’이지요. 우리는 사랑받을 때에 영혼이 즐겁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인간에게서 갈구할 때에 우리는 마치 시한폭탄이 들어있는 곰인형을 사랑하는 것과 같게 됩니다. 곰인형의 겉모습은 아름답고 푹신하지만 결국 속에는 터져 버리고 말 폭탄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겉모습에 매료되어 다가섰다가 결국 터지고 마는 폭탄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하느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사랑을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 심지어 지상의 것들을 단식하면서도 기쁨을 누릴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