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하는데,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 합니다. (2코린 1,18-20)
하느님은 성실하셔서 우리에게 늘 ‘예’를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하느님의 약속은 이미 ‘예’, 즉 완성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믿는 이는 누구나 구원을 얻게 하겠노라고 하셨고 당신 외아들을 따르는 이들은 그 길의 끝에 준비되어 있는 영원한 상급을 얻게 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길을 걷기 시작하는 순간, 그 길을 걷겠노라고 결심하는 그 순간 이미 그 약속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가오는 시간이 더딜 뿐 반드시 이루어지는 약속인 것이지요.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니까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응답은 쭈볏거리면서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라고 분명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약속에 대한 답변은 ‘예’말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를 의미하는 교회적인 용어인 ‘아멘’으로 응답을 합니다.
그러나 일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아멘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술자리에서 잔을 들고 ‘주님’을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대고 ‘아멘’을 외치는 것은 진정한 주님을 비꼬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올바른 의식을 품고 어디에다가 아멘을 외쳐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진정한 예언자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하는 사제들도 스스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거울처럼 비추어내고 있는지 늘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은 메꾸어지겠지만 아예 비추어내는 대상이 틀려져 있어서 신자들이 혼동스럽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조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명료하고 뚜렷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서 일하는 이들도 명료하고 뚜렷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명료함에 의혹을 섞고 의심을 섞고 다툼을 섞고 분쟁을 조장하곤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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