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완전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엉뚱한 것을 상상합니다. 우리는 완전함이라는 것을 정적이고 고요하고 꽉 찬 것으로 해석합니다. 마치 고정된 불변의 방정식과 같은 것, 어떤 충만한 에너지 따위를 상상합니다. 그래서 더이상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은 존재를 떠올리지요.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완전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완전은 사랑의 가르침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더 큰 사랑이 더 큰 완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합니다.
헌데 과연 사랑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곧잘 ‘우리끼리의 사랑’을 떠올립니다. 좋은 사람들끼리 좋은 자리에서 좋은 음식을 나누면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을 떠올리지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 인간의 미흡함에서 드러난 유토피아적 환상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부족’을 예비하고 그 부족을 향한 내뻗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에 꼭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만 있으라는 법이 없다는 이야기이고 그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도 사랑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남편과 아내가 있을 때에 그 어느 한 측도 완전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고 따라서 서로를 향한 증여가 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사건과 사고가 터지고 내 마음을 괴롭게 하는 일이 늘 생겨날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우리의 하느님은 그러한 부족함을 채우는 넘치는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시고 바로 그분이 우리의 완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그저 내 마음에 드는 무리와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서기 힘들고 꺼려지는 이들에게 다가서서 손을 내미는 과정으로 우리의 완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마태 5,46-47)
완전한 사람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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