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삶은 비극으로만 보입니다. 그는 제대로 된 옷 한 번 입어보지 못하였고, 제대로 된 음식 한 번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집도 없이 광야에서 살았으며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과는 동떨어진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죽음의 순간도 비극적으로 맞이합니다. 수를 다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증오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헌데 오늘 1독서는 적대자와 맞서는 하느님의 용사의 이야기가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반드시 그를 구한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건 우리가 지켜보기에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지켰더라면 하느님에게 충실했던 요한은 축복을 가득히 받고 그의 마지막도 풍요로워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로 인해서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좋은 것’에 대한 이미지를 올바로 구축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가르치고 그분께 충실한 삶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상급이 반드시 세상의 축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하느님에게 충실한 사람이 세상에서 입을 수 있는 불행을 정면으로 제시하시지요.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참된 행복인가?’ 하고 말이지요. 우리가 맞서야 하는 적대자는 세상적 가난, 세상적 불명예, 세상적 천시이기보다는 보다 내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으로부터 부적합자가 되는 것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것을 상실할 때에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지닌다 할지라도 우리는 쓸모없는 이, 바람에 나부끼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을 굳게 지니고 있다면 비록 온 세상이 대적하여 우리와 맞서고 우리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해도 우리는 복된 이들이 된다는 것을 독서와 복음은 말합니다. 물론 이는 세례자 요한이라는 예수님의 메신저에게 일어난 극단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