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곧잘 누구를 위해서 무언가를 바친다고 합니다. 특히 사제의 축일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이런 일이 더 잦아지지요. 과연 지향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해야 올바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바치는 기도, 나의 필요와 요구를 위해서 바치는 기도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뜻을 두고 바치는 기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미사 안에서 우리는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지요. 우리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 뜻을 두고 바칠 수 있는 기도라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뜻을 두는 것은 순간적으로 이루어 질 수도 있고 꾸준히 이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원의에서 벗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진실하게 기원하는 것은 언제라도 아름다운 행위가 됩니다.
하지만 이 지향이라는 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든 것입니다. 인간은 한 번에 하나씩을 신경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간절한 원의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의 지향은 순수해져야 합니다. 이것 저것 바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하나를 간절히 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 기도가 하느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화살을 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한 활에 화살 여러개를 재어 동시에 발사하려고 한다면 그 어느 것도 원하는 목적지에 가 닿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화살을 집중해서 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 기도가 가 닿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기도의 지향을 나의 진실한 성찰과 의지에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이렇게 하자고 해서 마지못해 그러한 다른 지향들을 덕지덕지 끼워 넣을 때에 일어납니다. 무턱대고 그런 모든 지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다른 지향들은 결국 나의 절실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다른 것들이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결국 가장 필요한 일을 분별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요.
우리의 기도의 지향은 순수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또 나아가 우리 자신이 그 몸을 올바로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온 몸 가운데에서 가장 아픈 곳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이신 예수님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손은 손대로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고 발은 발대로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면서 저마다 원하는 일만 하려고 든다면 몸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기도의 지향은 순수해야 하고 가장 필요한 곳을 향해야 합니다. 그곳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마음 쓰시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돈 몇 푼을 더 버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랑이 쏟아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승진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내 곁의 배우자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기도의 지향을 두고 바쳐 달라고 요구한다면 사랑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진정한 지향은 오직 하나 뿐이라는 것을 잊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올바로 분별되어 이루어지는 것 하나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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