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이 현세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고 다가올 그 날에 진정으로 소중한 것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간극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것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반대로 우리가 소홀했던 것이 너무나 소중한 것으로 드러날 때에 우리는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생을 사는 목적은 진짜 소중한 것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의 하찮은 취미거리 보다는 어른이 되어서 생을 꾸려나가는 것이 보다 중요하고, 돈보다는 사람 생명이 소중하며, 사람의 현세 생명보다는 영원한 생명이 소중하다는 진리이지요. 그래서 그 영원한 생명에 소용되는 것들이 진정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배워 알아야 합니다.
지구 주위를 돌던 태양이 실제로는 지구가 그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이해는 보다 완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상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재편성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보다 완전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깨달음을 올바로 얻기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는 벽과 마주해야 합니다. 즉 하느님에게로 우리 영혼이 나아가기 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와 자아라는 벽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욕구는 강력한 도전입니다. 욕구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욕구를 합당한 수준까지 절제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 역시도 우리가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데에 가장 복병이 됩니다. 인간의 자아는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특유의 한계성 때문에 보다 참된 가르침을 가로막기도 하는 것이지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늘 옳으니 심지어는 나의 뜻에 맞서는 것이 ‘하느님의 지혜’일지라도 그건 틀린 생각이 되는 것이지요.
구원을 얻는 방법은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간단한 방법을 사람들은 너무나 과장하고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회의 규율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야 하느님 곁에 다가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신학 과정이라도 수료해야 한다고, 성무일도라도 바쳐야 거룩해 진다고 스스로에게 엉뚱한 족쇄를 채우는 셈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엉뚱한 일에 매진해 왔는지 뒤늦게 깨닫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하느님은 그저 철부지와 같은 이들이 되기만을 기다려 오셨습니다. 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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