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의 부탁을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이는 제자들, 즉 당대의 사도들에게만 선포된 내용이 아닙니다. 이는 그때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오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신앙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군가가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선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나약하고, 어찌 보면 여전히 세속성의 종이 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고착된 신앙행위에 머물러 말씀을 전하는 데에 지극히 소극적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실패해 그들을 냉담 상태에 두고도 그들이 삼시 세끼 밥은 잘 먹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배고픈 이를 돕겠다면서 햇반을 가져다 주면서 그 집에 불을 지르고 있는 아기를 말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차라리 햇반을 주는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철없는 아기가 집에 불을 지르는 일을 막는 것이 더 큰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 신앙인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없는 일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금껏 거쳐온 그 어떤 시대보다 먹고 살기 좋은 시절에 ‘신부님,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열매 맺지 않는 이들에게서 달란트를 빼앗아 소출을 내는 민족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빼앗겼는지도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하긴 2000년 전에도 돼지를 치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떠나 달라고 부탁을 하고선 떠나는 예수님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밭에 뭍힌 보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그 보물을 그대로 두고 돌아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