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몸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셨고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한 인간으로 존재하셨지요. 이는 마치 우리의 몸에서 영혼을 따로 떼어내서 조사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먹으라고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몸을 먹지요. 물론 우리가 먹기 쉽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빵’이라는 형상을 사용하십니다. 실제의 몸의 형상 그대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신성과 인성을 그대로 주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도 그분을 받아 모시면서 양측으로 다 받아 모실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 입에 들어가는 빵으로만 그분을 모시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분을 나의 영혼으로 받아모셔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에서 실패하고 맙니다. 미사에 나오고 성체를 모시지만 그저 외적인 형상의 빵을 집어먹을 뿐이지요. 실제 그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낭비한 성체의 은총을 나중에 꼽아볼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수많은 성체 가운데 하나의 은총도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주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놀라지 않게, 우리가 두려움과 공포에 떨지 않게 당신을 철저히 숨기십니다. 그리고 선택된 영혼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셔서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예수님의 현존을 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박해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예수님의 현존애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구의 충족이기 때문입니다.
성체를 모시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올바르게 받아 모실 때에 그러합니다. 바로 영과 육으로 모두 경건히 받아모실 때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몸을 제대로 받아모실 때에 우리의 삶은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반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제대로 받아모시지 않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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