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성당에서 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식사 자리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한 형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자꾸 강론대에서 술 담배 좋지 않다는 이야기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찔리는 사람이 좀 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 주제가 즉시 ‘담배’가 되어 버렸습니다. 담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담배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해서 또 어떻게 담배를 끊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꺼내었고 이 주제는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이야기는 강론대에서 공공연하게 다 했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술과 담배는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무조건 술을 마신다고 질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도한 음주, 습관이 되어가는 음주를 질책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담배는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를 자신이 도로 입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절제있게 술을 즐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술, 즉 알코올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게 우리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취기를 얻기 위하여 찾는 술은 현실 도피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쓰일 수 있고 현실이 힘들 때마다 찾는 술은 자신의 건강과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데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중독과 파괴는 지극히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라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때는 이미 시기가 늦어버린 셈이지요.
담배에 관해서는 조금 더 엄격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담배는 그 자체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연기와 냄새는 담배를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피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사제가 할 일은 사람의 내면을 바로세우는 일입니다. 헌데 영적인 것만을 다루라고 한다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면 사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파괴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제가 마땅히 언급하고 지적하고 바로세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론 중에 참으로 많은 주제의 이야기들을 꺼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거기에서 자신에게 얻어 걸리는 하나의 주제 때문에 마음이 찔리곤 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을 찌르지 않는 주제를 고르다가는 딱히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사제의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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