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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멀리 산다고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마음이 차가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죄없는 아이들이 생매장을 당했는데 그걸 떠올려보며 가슴 아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매번 기사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유심히 읽어보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에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을 찾아 보았지요.

재난이나 사고는 늘 터지는 법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터지는가가 문제겠지요. 누구나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하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일이 벌어지는 것에는 전혀 다른 요인이 있는 법입니다.

세월호는 가슴 아픈 일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모의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나서 둘 다에게 버림을 받고 할머니 손에서 길러지다가 같은 가족인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렇게 자라서 이미 어른이 된 이를 저는 이곳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곤 합니다. 그러면 제가 할 일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신앙을 전하며 그 슬픔 속에 숨겨진 희망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비록 세월호 가족의 손을 잡아줄 순 없지만, 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강론대에 서서 힘있는 자들의 교만을 꺾고 가난하고 미천한 이들을 들어높이고 나면 미사가 끝나고 그에 도움을 받은 이들의 미소를 얻고, 또 고해소 안에서는 그동안 하느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의 뉘우침을 듣게 됩니다.

세월호를 보살피고 재발을 막는 방법은 매번 드러나는 기사에 그때마다 흥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삶을 정의롭고 선하고 책임감 있게 가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무능한 정부를 욕하면서도 정작 나의 가족이나 공동체에 사건이 일어나서 내가 가장으로서 또는 엄마로서 무능하게 대처하고 있다면 우리는 또다른 유형의 세월호 피해자를 양산하는 셈이 됩니다.

세월호가 가슴 아프다면 내 삶의 주변을 돌아보면서 다른 이들이 가슴 아프지 않게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세월호를 추모하고 되새기는 방법입니다. 행여 나의 불의와 무책임으로 다른 이들이 상처받고 있지 않은지를 살피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꾸려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우리의 자녀들 중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를 하는 이들이 나오게 되고 대한민국이 보다 책임감있고 의로운 나라가 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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