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빵 걱정을 합니다. 빵 걱정이라는 것은 결국 육신 생명을 유지시킬 방법에 대한 걱정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육신에 관계된 모든 걱정을 말하지요.
돈이 좀 많으면 빵을 많이 여분으로 구입해 둘 수 있으니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의 인지도가 높으면 언제라도 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니 사람들은 명예를 얻고 싶어하지요. 힘을 지니고 있으면 언제라도 빵을 갈취할 수 있으니 사람들은 권력을 얻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빵으로 간단하게 설명한 인간의 세속적 갈망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빵으로 내세우면서 당신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절대로 배고프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앞서의 육신적 빵과는 전혀 다른 관점입니다. 당신을 빵으로 내세운다는 것이 당신을 솥에 넣고 끓여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예수님은 영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일단 먹는다는 행위는 그것을 받아들여 나의 양분으로 삼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빵은 입으로 들어가서 몸이 힘을 잠시 얻고 결국 뒤로 찌꺼기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영신의 빵은 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영적 양분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빵입니다. 우리는 이를 올바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록 가톨릭 교회가 미사 중에 실제의 빵을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시켜 우리가 그 몸을 직접 받아 모실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그 빵은 단순히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서 소화가 되는 빵만이 아닌 셈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빵으로 주신 것은 당신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고 씹히고 산산이 부서지고 먹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그 본래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무리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마저도 여전히 세상의 빵을 찾기가 일쑤입니다. 세속적 인지도를 바라고 성당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 연애할 사람을 찾아서 모임에 나오는 청년들, 동아리활동 대신으로 하는 교리교사 생활 등등 세속적 목적을 성당에서 충족할 수 있는 이유는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빵을 찾는 사람은 참으로 드문 법입니다. 만일 한 사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내면으로 모시게 되면 그의 삶은 분명히 변화하게 됩니다. 그는 보다 겸손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성실히 일하고 사람들을 하느님 앞으로 데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상 안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되겠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 안에서 절대로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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