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교회는 고통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기회라고 가르쳐줍니다.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고통이 지니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어떻게 살아내야 고통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고통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연적인 고통입니다. 사람에게 노화가 오는 것이나 자연적인 재해와 같은 것은 자연스러운 고통이고 우리가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고통입니다. 늙어가는 이를 돌보아야 하고 재해 뒤에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감싸 안아야 하지요.
두번째로는 우리가 절대로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바로 죄의 결과로 다가오는 고통입니다. 죄는 영육간에 고통을 야기합니다. 지나친 음주는 숙취를 유발하고 증오는 영적인 괴로움을 만들어내지요. 이러한 종류의 고통들은 우리가 죄를 그친다면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당장 그치고 털어내어야 하는 고통이지요.
세번째 고통이 바로 질문하신 내용의 고통입니다. 즉, 내가 야기하지 않았지만 감내하는 고통, 희생하고 사랑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이지요. 타인에 의해서 야기된 고통을 우리가 감싸 안는 데에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특히 두번째 경우인 죄의 결과로 드러나는 고통을 누군가를 대신해서 자신이 짊어지는 고통인 경우가 가장 최상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통이지요. 그래서 이 고통은 하느님에게 영광을 드리고 죄인들을 살리는 고통이 됩니다.
따라서 이 세번째 고통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연적인 고통만 감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세상에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야기된 고통까지 감내한다는 것은 ‘계산상’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만을 어떻게든 처리하려는 이들과 자신이 하지 않은 것마저 지고 가려는 이들입니다. 전자를 세상의 법에 매인 사람이라고 하고, 후자를 하느님의 법에 자신을 내어놓는 이들이라고도 합니다. 전자를 세상의 자녀들이라고 하고 후자를 하느님의 자녀라고도 하지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마태 5,46) 이 말씀으로 위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나에게 좋은 것을 해 주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하느님의 자녀들 가운데 맏이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결심을 한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버리는’ 일이고, 나아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일’입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의 경우, 즉 자신을 버리는 일과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경우에 언제나 수반되는 것이고 따라서 고통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엉뚱한 고통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놓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우겨대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금육과 극기는 도리어 교만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두 팔을 쳐들고 묵주기도를 보란듯이 장시간 동안 하는 사람이 정말 그것을 희생으로 삼고 싶다면 골방에 들어가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말아야 하고 입을 닫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 혼자서 생고생을 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들이 보란 듯이 한길 모퉁이에서 그렇게 기도를 하지요. 그러한 이들은 교만한 이들입니다. 기도로 남에게 자신의 성덕을 자랑하고 싶은 이들이지요.
과연 그들이 집에서 아내의 설거지를 도울 지, 자녀들에게 따스한 말로 용기를 주고 신앙의 모범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런 이들은 타인의 부족함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자기들이 하는 식대로 하지 못한다고 깔보고 스스로 으스대기 일쑤입니다. 그들은 위선자들입니다.
정말 진실한 희생을 했다면 그것을 숨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희생은 몸을 학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희생은 우리의 막되먹은 의지를 하느님 앞에 봉헌하는 것입니다.
양팔로 묵주기도를 하는 것이 그만한 보상이 뒤따른다면 그것은 누구나 감히 도전해 볼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자신의 의지를 꺾고 남을 돕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세상에 이런 이가 한 명만 있어도 그가 속한 공동체에는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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