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기쁨이라는 것은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간헐적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는 데에서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충만감입니다. 물론 이 충만감에서 외적인 기쁨이 드러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때로는 외적으로 큰 시련 중에 있어도 내적으로는 이 충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요.
세상 사람들은 기쁨을 찾아서 온 세상을 헤메고 다닙니다. 그들은 좋은 음식, 좋은 옷, 편안한 생활, 안락한 환경을 찾아 누리기 위해서 애를 쓰지요.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일을 합니다. 그리고는 결국 그것을 얻었을 때에는 정작 그것을 누리지 못하지요.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주변에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좋지 못한 것은 그런대로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가장 근본에 희망을 잃지 않고 있으며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슬픔 속에서도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지요.
예수님은 곧 수난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는 ‘하느님’이 곧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적이 없고 따라서 언제나 기쁨을 간직하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물론 외적으로는 배척 당하고 수난 당하고 죽임을 당하지만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춰둔 기쁨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지요.
아무리 유행어가 재미있고 코믹한 상황이 벌어져도 내면이 공허한 사람의 웃음은 결코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지요. 반면 내면이 충만한 사람은 외적으로 그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아주 사소한 기쁨의 요소를 놓치지 않고 찾아냅니다. 새들의 지저귐이나 아이들의 미소 한번으로도 그는 다시 기쁨의 빛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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