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청하는 것이 뭔지 모르고 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좋아 보이니 청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은총’과 같은 것입니다. 그게 정확히는 뭔지 모르고 일단은 좋아 보이니 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총이라는 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 공부를 잘하게 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곧잘 아이를 닥달하기 시작하지요.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공부에 매력을 느껴야 하고 맛을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즉각적인 결과를 원할 뿐이지요. 그저 점수만 잘나오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억지로 밀어 붙이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힘들어하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결국 아이는 공부에 흥미는 커녕 역겨움을 느끼게 되고 도리어 엇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말 은총을 원한다면 그 은총에 수반되는 것을 껴안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을 탐내지만 그분의 십자가를 쳐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번 제자들에게 강조하셨지요. 사람의 아들의 운명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탐하지만 사람들에게 비난 당하고 박해를 받고 내쳐지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우리는 ‘고상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하지요. 친구들과 어울려 고급 카페에서 커피와 케익을 먹으면서 아주 고상한 신앙생활을 하려 합니다. 천만에요. 신앙은 그딴 가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은총을 청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청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것을 청하기 일쑤입니다. 당신은 정말 그 잔을 마실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부모님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 공부를 잘하게 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곧잘 아이를 닥달하기 시작하지요.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공부에 매력을 느껴야 하고 맛을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즉각적인 결과를 원할 뿐이지요. 그저 점수만 잘나오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억지로 밀어 붙이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힘들어하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결국 아이는 공부에 흥미는 커녕 역겨움을 느끼게 되고 도리어 엇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말 은총을 원한다면 그 은총에 수반되는 것을 껴안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을 탐내지만 그분의 십자가를 쳐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번 제자들에게 강조하셨지요. 사람의 아들의 운명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탐하지만 사람들에게 비난 당하고 박해를 받고 내쳐지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우리는 ‘고상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하지요. 친구들과 어울려 고급 카페에서 커피와 케익을 먹으면서 아주 고상한 신앙생활을 하려 합니다. 천만에요. 신앙은 그딴 가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은총을 청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청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것을 청하기 일쑤입니다. 당신은 정말 그 잔을 마실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