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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

컴퓨터를 가져와 달라고 해서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글씨는 써도 괜찮다는데 어찌나 걱정을 하는지요. 아예 손가락도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나 봅니다. ㅋ

지난 주 토요일(16일)에 이곳에 와서 어느새 3일이 훌쩍 지나 버렸네요. 그동안은 주는 약으로 잠만 잤습니다. 숲속의 공주님처럼 말이지요. 밥이 어찌나 먹기 싫은지 마구 응석을 부렸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음식만 보면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으니까요.

그 와중에도 옆의 자매들과 교리교육을 했습니다. 사람은 들어 높여진 상태의 사람과 평범한 사람, 그리고 낮춰진 사람이 있노라고, 우리는 낮춰진 상태에서 벗어나 평범한 상태를 지나 들어높여진 이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자기만 챙기는 사람에서 벗어나 타인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돌보아주는 모든 것에 감사 드렸습니다.

제가 머무는 병원 시설은 이곳에서는 나름 고급에 속합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와볼 생각도 못하는 곳이겠지요.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형편없습니다. 지금 있는 방도 텔레비전이 고장나서 옮겨 왔는데 와보니 냉장고가 고장나 있네요.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저는 볼리비아에서 최고의 케어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첫날은 좀 심각했었습니다. 딸꾹질이 멈추질 않더군요. 마치 만취한 사람처럼 딸꾹질을 얼마나 해대는지요. 아마도 간과 담낭이 비대해져서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수액을 달고 주사약을 넣고 하니 조금 가라앉긴 하더군요. 이튿날은 어떻게 지나간지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본당에는 급한 대로 총회장에게 공소예절을 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꽤 많이 왔다더군요. 얼른 나아서 다시 양들을 돌봐야 할텐데 말이지요.

이번주는 세례교육마저 있어서 걱정이긴 합니다마는 어쩔 수 없이 본당의 다른 책임자에게 세례교육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전에는 나아서 돌아가려고 했더니 총회장님이 세례를 거행할 사람도 물색해 보겠노라고 하네요.

사목정보 만화는 펑크 통보를 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지요. 사실 아픈 중에도 불구하고 그리던 중이었는데... 도저히 더 계속할 수 없더군요. 나중에 돌아가면 완성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또 슬슬 잠이 오네요. 그냥 제가 좀 게으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간이 배밖에 나와서 만성피로가 늘 다가오는 것이었다는... 여러분들도 간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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