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마르 11,32-33)
신앙이 없는 이들의 특징은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지니게 될는지를 예의주시하며 그것을 늘 두려워합니다. 반면 하느님의 의견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사람들의 입맛에 맛는 것을 제공하고 그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돌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은 코에 붙이면 코걸이이고 귀에 붙이면 귀걸이입니다.
물론 그들도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이의 편에 붙습니다. 그들은 언뜻 보편적 가치를 선호하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왜냐하면 보편적인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의 손을 늘 들어주어야 자신들이 먹고 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하느님에게 반하는 이야기를 하기 일쑤입니다. 아니, 사실 하느님은 애시당초부터 상관이 없었던 것이지요.
인터넷 상에는 언뜻 자신을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전혀 하느님의 뜻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군중의 의견을 중시합니다. 여기서 군중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백성’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표현입니다. 군중은 많은 수의 집단일 뿐이고 하느님의 백성은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군중은 자신들의 선호도에 따라 연합하고 갈라지기를 반복하는 한편 하느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최고로 삼습니다.
인터넷 상의 스타인 그들은 시사적인 문제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런 일들에 관심을 지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의사를 표출합니다. 또한 그들은 스타의 명언들을 인용하는 것을 즐깁니다. 지금은 우리의 교황님도 스타이시니 언제든지 그분의 말씀이 먹혀든다는 것을 잘 알고 언제라도 인용합니다.
그들은 흔히 종교 혼합주의적인 면을 드러냅니다. 모든 종교는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풍기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면에서 종교를 해석하고 사람들의 지성을 만족시킬만한 해석을 내어놓기를 즐기지요. 정말 하느님의 참 뜻이 무엇일지 그분이 바라시는 모습은 어떤 것일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은 군중이 수긍할만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 앞에 다가온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대한 질문에 답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들의 그 대답으로 인해서 그들의 의도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역시도 그들에게 대답을 거부하십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한들 그들이 처음부터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마르 11,33)
신앙이 없는 이들의 특징은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지니게 될는지를 예의주시하며 그것을 늘 두려워합니다. 반면 하느님의 의견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사람들의 입맛에 맛는 것을 제공하고 그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돌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은 코에 붙이면 코걸이이고 귀에 붙이면 귀걸이입니다.
물론 그들도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이의 편에 붙습니다. 그들은 언뜻 보편적 가치를 선호하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왜냐하면 보편적인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의 손을 늘 들어주어야 자신들이 먹고 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하느님에게 반하는 이야기를 하기 일쑤입니다. 아니, 사실 하느님은 애시당초부터 상관이 없었던 것이지요.
인터넷 상에는 언뜻 자신을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전혀 하느님의 뜻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군중의 의견을 중시합니다. 여기서 군중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백성’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표현입니다. 군중은 많은 수의 집단일 뿐이고 하느님의 백성은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군중은 자신들의 선호도에 따라 연합하고 갈라지기를 반복하는 한편 하느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최고로 삼습니다.
인터넷 상의 스타인 그들은 시사적인 문제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런 일들에 관심을 지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의사를 표출합니다. 또한 그들은 스타의 명언들을 인용하는 것을 즐깁니다. 지금은 우리의 교황님도 스타이시니 언제든지 그분의 말씀이 먹혀든다는 것을 잘 알고 언제라도 인용합니다.
그들은 흔히 종교 혼합주의적인 면을 드러냅니다. 모든 종교는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풍기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면에서 종교를 해석하고 사람들의 지성을 만족시킬만한 해석을 내어놓기를 즐기지요. 정말 하느님의 참 뜻이 무엇일지 그분이 바라시는 모습은 어떤 것일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은 군중이 수긍할만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 앞에 다가온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대한 질문에 답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들의 그 대답으로 인해서 그들의 의도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역시도 그들에게 대답을 거부하십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한들 그들이 처음부터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마르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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