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요한 16,12-13)
예수님은 사실 가르쳐 주고 싶으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자들의 수준으로서는 성경에 적힌 것이 당신이 알려주실 수 있는 것의 전부였지요. 예수님이 몰라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물탱크에 물은 넘쳐나는데 받을 수 있는 그릇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의 영을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진실하게 가르칠 영을 약속하셨고 실제로 그 영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진리의 영을 받은 이들이 존재하지요. 그들은 진리를 말합니다. 사실이 아니라 진리를 말하지요. 그게 무슨 차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은 악마도 쓰는 것입니다. 악마는 사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요. 사실은 모두 ’지나간 일’, ‘굳어진 일’, ’과거’입니다. 그래서 악마는 누군가의 과거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그의 과거가 어두울 때에는 더욱 그렇지요. 악마는 그 사실을 바탕으로 교묘하게 비틀어대기 선수입니다. 그러면 대다수는 그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왜냐면 그가 말하는 것의 기초가 사실이기 때문에 그 말을 진실성을 믿어버리는 셈이지요.
진리는 오직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물었지요.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말입니다. 진리에 가담하지 않는 자들은 진리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이 거짓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오직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내어주시는 것이고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 즉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을 아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선택된 이들은 진리를 받아서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더욱 풍성히 전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핵심 진리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영원한 천상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 모두는 그분을 통해서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다른 면모들이 더욱 많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마치 화면 해상도가 640X480이던 모니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2560X1920의 해상도를 지닌 모니터를 갖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화면의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게 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진리에 대해서 알게 된 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후로 수많은 진리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요.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함부로 발설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 사랑을 바친다면 진리의 영은 우리에게도 다가오셔서 당신의 진리를 속삭여 주십니다. 그러면 세상의 진리가 보이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내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나고, 반대로 겉은 미천해 보여도 속에는 엄청난 보물을 감추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외적인 모습에 홀려 그것이 전부인 양 세상을 살아가지요.
진리를 찾는 사람은 드뭅니다. SNS로 멋들어진 글을 본다고 진리의 삶을 살고 있는 양 착각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진리는 하느님에게서 나와 우리의 내면의 진실한 영을 통해서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손가락을 몇 번 휘휘 움직이면서 좋은 글에 ‘좋아요’를 클릭했다고 우리가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좋아요를 클릭한 글에 나오는 내용을 직접 살아갈 때에 비로소 어느정도 진리에 다가서는 것이지요. 겸손이 소중한 가치라는 글을 읽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이유없이 모욕하는데에도 그 순간을 견디고 그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때에 비로소 겸손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은 이미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진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나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진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진리를 말하는 자로 속이는 이들입니다. 그들을 분별하기에는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어쩔 수는 없습니다. 지혜를 충분히 기를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사실 가르쳐 주고 싶으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자들의 수준으로서는 성경에 적힌 것이 당신이 알려주실 수 있는 것의 전부였지요. 예수님이 몰라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물탱크에 물은 넘쳐나는데 받을 수 있는 그릇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의 영을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진실하게 가르칠 영을 약속하셨고 실제로 그 영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진리의 영을 받은 이들이 존재하지요. 그들은 진리를 말합니다. 사실이 아니라 진리를 말하지요. 그게 무슨 차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은 악마도 쓰는 것입니다. 악마는 사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요. 사실은 모두 ’지나간 일’, ‘굳어진 일’, ’과거’입니다. 그래서 악마는 누군가의 과거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그의 과거가 어두울 때에는 더욱 그렇지요. 악마는 그 사실을 바탕으로 교묘하게 비틀어대기 선수입니다. 그러면 대다수는 그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왜냐면 그가 말하는 것의 기초가 사실이기 때문에 그 말을 진실성을 믿어버리는 셈이지요.
진리는 오직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물었지요.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말입니다. 진리에 가담하지 않는 자들은 진리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이 거짓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오직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내어주시는 것이고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 즉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을 아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선택된 이들은 진리를 받아서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더욱 풍성히 전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핵심 진리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영원한 천상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 모두는 그분을 통해서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다른 면모들이 더욱 많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마치 화면 해상도가 640X480이던 모니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2560X1920의 해상도를 지닌 모니터를 갖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화면의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게 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진리에 대해서 알게 된 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후로 수많은 진리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요.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함부로 발설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 사랑을 바친다면 진리의 영은 우리에게도 다가오셔서 당신의 진리를 속삭여 주십니다. 그러면 세상의 진리가 보이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내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나고, 반대로 겉은 미천해 보여도 속에는 엄청난 보물을 감추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외적인 모습에 홀려 그것이 전부인 양 세상을 살아가지요.
진리를 찾는 사람은 드뭅니다. SNS로 멋들어진 글을 본다고 진리의 삶을 살고 있는 양 착각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진리는 하느님에게서 나와 우리의 내면의 진실한 영을 통해서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손가락을 몇 번 휘휘 움직이면서 좋은 글에 ‘좋아요’를 클릭했다고 우리가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좋아요를 클릭한 글에 나오는 내용을 직접 살아갈 때에 비로소 어느정도 진리에 다가서는 것이지요. 겸손이 소중한 가치라는 글을 읽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이유없이 모욕하는데에도 그 순간을 견디고 그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때에 비로소 겸손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은 이미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진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나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진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진리를 말하는 자로 속이는 이들입니다. 그들을 분별하기에는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어쩔 수는 없습니다. 지혜를 충분히 기를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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