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제’라는 직분은 참으로 오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사와 거룩한 성찬례가 중심을 차지하는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를 축복하고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직분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사제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사제들은 신자들의 이목의 중심이 됩니다. 신자들은 사제의 삶의 예의주시하며 언제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뒤에서 수근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결국 모든 사제들은 저 나름으로 신자들의 수다의 대상이 됩니다.
때로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 밝혀내야 하는가 하는 것이 화두가 됩니다. 사제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들의 소위 ‘엇나감’을 어디까지 참아 견뎌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분별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도 안되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톨릭 신앙인들은 사제들의 삶의 엇나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요? 과연 어떤 분별로 그런 일들을 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1) 사회적 중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가만히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그냥 두고 보는 것은 하느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을 향한 성범죄나 거대 공적 자금의 횡령과 같은 것을 직접 알고 있다면 양심에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무척 신중해야 할 것은 틀림 없습니다. 절대로 남에게 들은 이야기로 함부로 모함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자들도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2) 사제의 오류가 인간의 약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성격적 결함이나 성적인 약점과 같은 경우에는 성경 말씀처럼 대해야 합니다. 먼저 가서 조용히 타이르고 그리고 함께 가서 타이르고 그래도 바꾸지 않으면 공동체의 대표, 즉 장상인 주교님에게 알리는 식으로 조용히 일이 처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척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아서’ 공연히 사제를 미워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선하고 여린 신앙인들은 사제의 오류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벙어리 냉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제의 오류는 뻔히 보이는데 행여 사제직의 거룩함에 해를 끼칠까 걱정도 되고 공동체의 눈치도 보이고 하는 것이지요.
또 어떤 경우에는 개인적인 원한, 또는 자신이 추구하는 특정한 목적 때문에 기어코 한 사제에게서 약점을 찾아내어 끝까지 추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그를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지요.
과거의 신비감이 모두 벗겨지고 더는 성역이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제직’의 소중함이 변질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제직을 품고 있는 인간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중이지요. 사람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해서 뭐든 일단 벗기고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대상으로 사제도 예외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사제들과 사제 지망생들은 마음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더는 신자들의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신학 지식만을 습득할 게 아니라 인격 함양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거룩함’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한 사제로 탄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저런 시련 속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해 가면서 사제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무엇보다도 사제직을 지향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따뜻한 시선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쉽지 않은 길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그 길을 가려 하지 않으면서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매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가뜩이나 없는 성소자는 더욱 더 메말라가게 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여러분들에게 한 사람의 사제로서 드리고 싶은 부탁은, 사제와 성소자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길이 쉽겠는가마는 이 길에는 많은 기도, 즉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젊고 혈기 왕성한 사내가 굳건한 마음으로 충실히 걸어내기는 너무나도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본당 사제를 사랑해 주십시오. 그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십시오. 네 친구에게 실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 중풍병자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의 기도는 그 사제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다 놓고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보고 그의 병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한 사제가 무너지고 나면, 물론 그 사제 당사자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지만 그 사제를 무너뜨린 이, 그리고 그 사제를 지탱하지 못한 이들도 만만찮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사제들은 신자들의 이목의 중심이 됩니다. 신자들은 사제의 삶의 예의주시하며 언제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뒤에서 수근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결국 모든 사제들은 저 나름으로 신자들의 수다의 대상이 됩니다.
때로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 밝혀내야 하는가 하는 것이 화두가 됩니다. 사제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들의 소위 ‘엇나감’을 어디까지 참아 견뎌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분별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도 안되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톨릭 신앙인들은 사제들의 삶의 엇나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요? 과연 어떤 분별로 그런 일들을 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1) 사회적 중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가만히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그냥 두고 보는 것은 하느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을 향한 성범죄나 거대 공적 자금의 횡령과 같은 것을 직접 알고 있다면 양심에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무척 신중해야 할 것은 틀림 없습니다. 절대로 남에게 들은 이야기로 함부로 모함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자들도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2) 사제의 오류가 인간의 약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성격적 결함이나 성적인 약점과 같은 경우에는 성경 말씀처럼 대해야 합니다. 먼저 가서 조용히 타이르고 그리고 함께 가서 타이르고 그래도 바꾸지 않으면 공동체의 대표, 즉 장상인 주교님에게 알리는 식으로 조용히 일이 처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척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아서’ 공연히 사제를 미워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선하고 여린 신앙인들은 사제의 오류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벙어리 냉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제의 오류는 뻔히 보이는데 행여 사제직의 거룩함에 해를 끼칠까 걱정도 되고 공동체의 눈치도 보이고 하는 것이지요.
또 어떤 경우에는 개인적인 원한, 또는 자신이 추구하는 특정한 목적 때문에 기어코 한 사제에게서 약점을 찾아내어 끝까지 추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그를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지요.
과거의 신비감이 모두 벗겨지고 더는 성역이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제직’의 소중함이 변질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제직을 품고 있는 인간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중이지요. 사람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해서 뭐든 일단 벗기고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대상으로 사제도 예외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사제들과 사제 지망생들은 마음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더는 신자들의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신학 지식만을 습득할 게 아니라 인격 함양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거룩함’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한 사제로 탄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저런 시련 속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해 가면서 사제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무엇보다도 사제직을 지향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따뜻한 시선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쉽지 않은 길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그 길을 가려 하지 않으면서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매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가뜩이나 없는 성소자는 더욱 더 메말라가게 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여러분들에게 한 사람의 사제로서 드리고 싶은 부탁은, 사제와 성소자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길이 쉽겠는가마는 이 길에는 많은 기도, 즉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젊고 혈기 왕성한 사내가 굳건한 마음으로 충실히 걸어내기는 너무나도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본당 사제를 사랑해 주십시오. 그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십시오. 네 친구에게 실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 중풍병자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의 기도는 그 사제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다 놓고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보고 그의 병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한 사제가 무너지고 나면, 물론 그 사제 당사자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지만 그 사제를 무너뜨린 이, 그리고 그 사제를 지탱하지 못한 이들도 만만찮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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