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사진을 찍거나 초음파 사진을 찍거나 MRI사진을 찍으면 속에 들어있는 게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환자일지라도 그런 사진들을 통해서 속에 작용하고 있는 종양과 같은 것을 잡아내는 것이지요.
우리 인간은 서로 교묘히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내가 하는 어두움의 생각을 타인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요. 은밀하고도 추악한 생각, 증오와 폭력, 시기와 질투 그러한 모든 것들을 은밀히 감추고 정작 앞에서는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눈은 그 모든 것을 꿰뚫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하느님은 그런 생각의 원인과 그런 생각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의지의 모든 결정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은밀한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눈 앞에 드러나고 있는 일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지 못하면 그 교만이 얼마나 드높아지는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덕목의 기본은 ‘하느님’을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내가 누구이건데 다른 이를 심판하려 든단 말입니까?
같은 행위를 보고 사랑을 꺼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혐오감을 꺼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결정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거지를 보고 극도의 거리낌을 느끼는 사람과 그를 보고 진정으로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을 하느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꼴사나운 이를 보고 속으로 빈정대고 앙심을 품는 사람과 반대로 그의 부족한 인간적인 면모를 안타까워 하면서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결심을 하는 사람을 하느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선택합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 되는 법도 없고, 돈이 많고 부유하다고 해서 마음이 절로 넉넉해진다는 법도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준비를 갖추는 법이니까요. 반대로 늘상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온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집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자녀들은 부모의 삶의 무게를 자신이 부모가 되고서야 느끼는 법이지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 교묘히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내가 하는 어두움의 생각을 타인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요. 은밀하고도 추악한 생각, 증오와 폭력, 시기와 질투 그러한 모든 것들을 은밀히 감추고 정작 앞에서는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눈은 그 모든 것을 꿰뚫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하느님은 그런 생각의 원인과 그런 생각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의지의 모든 결정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은밀한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눈 앞에 드러나고 있는 일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지 못하면 그 교만이 얼마나 드높아지는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덕목의 기본은 ‘하느님’을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내가 누구이건데 다른 이를 심판하려 든단 말입니까?
같은 행위를 보고 사랑을 꺼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혐오감을 꺼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결정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거지를 보고 극도의 거리낌을 느끼는 사람과 그를 보고 진정으로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을 하느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꼴사나운 이를 보고 속으로 빈정대고 앙심을 품는 사람과 반대로 그의 부족한 인간적인 면모를 안타까워 하면서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결심을 하는 사람을 하느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선택합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 되는 법도 없고, 돈이 많고 부유하다고 해서 마음이 절로 넉넉해진다는 법도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준비를 갖추는 법이니까요. 반대로 늘상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온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집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자녀들은 부모의 삶의 무게를 자신이 부모가 되고서야 느끼는 법이지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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