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특징은 ‘두려움’입니다. 주인이 무서워 죽을 지경입니다. 언제 자신을 벌할지, 내가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 언제 나에게 불이익을 줄지 두렵고 떨립니다. 그래서 합니다. 의무적으로, 억지로 합니다. 하지 않으면 벌받고 불이익을 얻을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많은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이렇게 간주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잃고 영원한 어둠에 빠져드는 것이 두려워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무언가 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화낼까 두려워서 그것을 합니다. 그렇게 주일미사를 나오지만 미사를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전혀 기쁨이 없습니다. 오히려 미사가 싫고 꺼려집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미사는 그들에게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의 근본에는 그들의 그릇된 생각과 행위가 있습니다. 아이가 순수하고 마음이 맑을 때에는 아빠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나눕니다. 하지만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하고 나면 아빠를 보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뵙는게 두려워지는 이유는 우리 안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버리고 뉘우치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던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 고집스럽습니다. 그렇게 두려움을 유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세상 안에서 아직 탐나는 게 많고,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미뤄둡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꺼려집니다.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반면 자녀들은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들은 상속자들입니다. 훗날 반드시 그분의 나라를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은 하느님을 알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그들은 사랑이 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이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런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협하고 억누르기 일쑤입니다. ‘너 이런 거 안하면 이거 안준다!’, ‘너 이런 거 안하면 때린다!’라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왜냐면 그들 안에는 사랑, 애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배운 거라고는 억눌림과 두려움 뿐이기 때문이지요.
모쪼록 종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종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어두움이 있다면 뉘우치고 하느님에게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우리는 여전히 너무나 고집스럽습니다. 언제나 ‘내일 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내일은 다가오지 않을 날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면 인간은 언제나 떠나야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많은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이렇게 간주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잃고 영원한 어둠에 빠져드는 것이 두려워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무언가 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화낼까 두려워서 그것을 합니다. 그렇게 주일미사를 나오지만 미사를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전혀 기쁨이 없습니다. 오히려 미사가 싫고 꺼려집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미사는 그들에게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의 근본에는 그들의 그릇된 생각과 행위가 있습니다. 아이가 순수하고 마음이 맑을 때에는 아빠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나눕니다. 하지만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하고 나면 아빠를 보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뵙는게 두려워지는 이유는 우리 안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버리고 뉘우치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던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 고집스럽습니다. 그렇게 두려움을 유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세상 안에서 아직 탐나는 게 많고,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미뤄둡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꺼려집니다.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반면 자녀들은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들은 상속자들입니다. 훗날 반드시 그분의 나라를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은 하느님을 알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그들은 사랑이 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이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런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협하고 억누르기 일쑤입니다. ‘너 이런 거 안하면 이거 안준다!’, ‘너 이런 거 안하면 때린다!’라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왜냐면 그들 안에는 사랑, 애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배운 거라고는 억눌림과 두려움 뿐이기 때문이지요.
모쪼록 종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종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어두움이 있다면 뉘우치고 하느님에게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우리는 여전히 너무나 고집스럽습니다. 언제나 ‘내일 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내일은 다가오지 않을 날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면 인간은 언제나 떠나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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