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17-19)
거룩해진다는 것은 세상과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세상과의 분리가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일치가 예비되어야 하지요. 즉,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거룩함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위해서 노력하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수많은 오류가 양산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거룩해질 필요가 있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최종적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분리’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방법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진리는 바로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결국 아버지가 거룩하게 하려는 이들이 거룩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일을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고 아들은 그 일을 교회를 통해서 이룹니다. 결국 우리 각자는 이 사명을 지니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거룩하게 가꾸어야 하고 나아가 세상에 우리의 거룩함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자자, 추상적인 표현은 이정도로 되었고, 우리가 흔히 거룩하다고 하는 이들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사제나 수도자를 ‘거룩하게’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들의 복장이나 셍활에서 세상과의 분리를 체험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라면 참으로 부족한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제가 복장만 갖추고는 여느 술집에서 일반 신앙인보다 더한 추태를 부린다면 그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수녀님이나 수사님을 거룩하게 느끼는 이유는 그 고유의 복장과 생활양식 때문입니다. 헌데 간혹 사목 일선에 나온 수녀님이나 수사님의 모양새가 세상의 여느 직장 상사보다 더욱 못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서 전혀 거룩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세상과 다른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헌데 그리스도인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시정잡배나 할 일들을 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 셈이지요.
우리는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바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목적으로 세상에 보내진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섞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 것입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세상과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세상과의 분리가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일치가 예비되어야 하지요. 즉,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거룩함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위해서 노력하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수많은 오류가 양산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거룩해질 필요가 있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최종적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분리’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방법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진리는 바로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결국 아버지가 거룩하게 하려는 이들이 거룩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일을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고 아들은 그 일을 교회를 통해서 이룹니다. 결국 우리 각자는 이 사명을 지니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거룩하게 가꾸어야 하고 나아가 세상에 우리의 거룩함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자자, 추상적인 표현은 이정도로 되었고, 우리가 흔히 거룩하다고 하는 이들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사제나 수도자를 ‘거룩하게’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들의 복장이나 셍활에서 세상과의 분리를 체험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라면 참으로 부족한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제가 복장만 갖추고는 여느 술집에서 일반 신앙인보다 더한 추태를 부린다면 그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수녀님이나 수사님을 거룩하게 느끼는 이유는 그 고유의 복장과 생활양식 때문입니다. 헌데 간혹 사목 일선에 나온 수녀님이나 수사님의 모양새가 세상의 여느 직장 상사보다 더욱 못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서 전혀 거룩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세상과 다른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헌데 그리스도인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시정잡배나 할 일들을 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 셈이지요.
우리는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바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목적으로 세상에 보내진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섞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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