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없는 이야기는 만들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작 며칠을 남미 여행을 다녀와서 마치 남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과장될 수 있고 허풍을 떨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정작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그럴듯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절대로 남에게 필요한 자양분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자양분은 그것을 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체험으로만 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보고 여러 위험요소를 알고 난 뒤에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조언이 있지요. 그런 구체적인 체험이 없이는 소설을 쓰게 되고 그런 소설을 읽은 사람은 환상에 사로잡혀 여행을 하다가 큰 일을 당하곤 합니다.
신앙 안에서도 오직 체험으로만 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내 안의 죄를 끊어버리고 거룩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그것을 위해 노력해 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 이의 인도를 따를 때에 많은 것들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고 쓸데없는 노력 없이 신앙 안에서 진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은 자신이 추상적으로 연구한 것들을 진리라고 꺼내 놓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외적 권위만을 보고 그런 것을 따라가다가 낭패를 보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야고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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