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을 만드는 회사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거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회사는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법의 허점을 찾아 다닐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유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 때에 우리는 '고객님'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호갱님'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적게 지출하고 많이 버는 것 그것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선익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당신을 깎아내면서도 다가오는 이들의 영적 선익을 추구한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움직임과는 정반대되는 움직임을 추구하는 분,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면서 죄많은 인간을 당신의 나라에 이끌어 들이고자 노력하신 분, 당신의 생명을 헌신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가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정반대로 다가갑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마치 자신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는 인물로 간주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들을 없애 버리십니다. 무엇보다도 이기적인 마음과 탐욕을 잠재우고 죄악을 없애 버리십니다. 그래서 거기에 들러붙어 있던 사람은 자신에게서 무언가가 사라지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과연 더 고통스러운 일일까요? 나에게서 어둠이 빠져 나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어둠을 쥐고 누군가와 죄스런 관계에 빠져들어서 극도로 증오하고 다투고 싸우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것일까요?
따라서 지혜는 당신을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구에 따라서 스승을 고르고 진정한 지혜를 외면하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르침 마무리에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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