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에 우리가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은 '가난한 이에게는 돈이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자선에 연관된 활동이 거기에 촛점이 맞추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선이라는 활동을 너무나 소극적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1. 가난한 이가 필요한 도움
일단 명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돈이 필요한가? 네, 당연합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돈인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정말 기본적인 생활도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도움인지 아니면 이미 충분히 존엄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에게 우리가 양심의 불을 끄기 위해서 던져주는 것인지는 중요한 성찰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에는 가난한 이를 돕는 게 아니라 도리어 망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본적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도움은 반드시 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서 그가 이미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다음에 주려는 도움은 그의 탐욕을 키우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위탁 도움의 문제점
그리고, 우리가 돕기를 바라면서 위탁하는 주체의 성실성도 문제가 됩니다. 정말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실제로는 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광고효과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전혀 엉뚱한 목적으로 재정이 사용된다는 그것은 또 어찌할 것입니까? 예컨대 본당에서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쓰이기를 바라는 빨랑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금액들이 행여 다른 누군가의 술값으로 계산되고 있다면 그건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이런 요소들을 알고 자선의 대상자에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자선의 방식을 올바로 선택하는 것도 소중한 일입니다.
3. 다양한 자선
그리고 과연 다른 이를 돕는 것이 '물질' 뿐인가도 성찰해야 합니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에는 우리 주변에서 정말 기본 생활이 부족한 사람을 찾아보는 게 의외로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를 돕는 것이 꼭 물질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냥 잠깐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현대인들은 '외로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또 영적 피폐함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4. 상대의 필요를 파악하라
자선은 내가 남아서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거지에게 동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선은 상대의 필요를 올바로 읽어내고 그가 그런 부족함을 겪으면서 힘들고 괴로울 것을 내가 공감하고 동정하기 때문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즉 '마음이 하나로 될 때' 올바른 자선이 이루어집니다. 그가 내적으로 겪고 있는 필요와 어려움이 곧 나에게 느껴지는 요소가 될 때에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자선'이라는 주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마음, 그리고 상대의 힘겨움을 함께 느끼는 참된 사랑이 자선에 선행 되어야 합니다. 그런 내면의 충실함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나약하고 무지한 우리를 일깨워주시려는 신부님의 선교열정에 감탄하고있습니다.
자선의 의미가 제대로 알려지기를바라는맘입니다.
먼저 기도와 단식을 제대로 실천하고 자선을할때는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실천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겸손의 용기가 참으로
뒤따르는것이라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것이
아무도 알지못하지만 주님만아는 내적 큰기쁨에
넘치는 삶으로 변화되어간다는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