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은 그가 소유한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존경은 그가 '되어 있는 바'에 따라서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적으로 덕지덕지 무언가를 붙인다고 해서 절대로 존경스러워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재화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물건을 지니고 있는지와 같은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으로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앞에서는 그가 지닌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알랑방귀를 뀌겠지만 뒤에서는 그를 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타이틀, 기술, 스펙도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어느 전문분야의 최고가 된다고 해도 그 '분야' 자체와 상관없는 이에게는 의미없는 타이틀일 뿐입니다. 시골 할머니에게 관현악단 수석 바이올린 지휘자는 그저 깽깽이 연주자일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소죽 하나도 끓이지 못하는 천하에 쓸모없는 놈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지닌 지식과 누적된 경험이 겸손과 더불어 드러나지 않을 때에는 존경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학생들은 이미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교수에 대해서 저마다의 의견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존경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권력의 기본 속성은 '지배하는 것'이고 지배당하는 입장에서 지배하는 이를 존경하고 싶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지배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힘'이 이용되어야 하고 그 힘은 언제나 피지배자의 동의를 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힘에 억눌린 이들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이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신음하면서 원망과 앙심을 품게 됩니다.
때로는 '관계'를 소유하려고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유명한 누구를 잘 안다는 식입니다. 그 유명한 사람과 친인척 관계이고 사이가 굉장히 가깝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그 사람의 존경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착각할 뿐이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그와 친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의도하는 바를 나 역시도 동조하고 실천해야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공식석상에서 만났다고 교황님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교황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나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에야 교황님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직접 만나고 그분과 함께 살면서 그분의 모습을 체험하게 된 이들에게는 존경스러운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가르쳤고 가르친 바를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의 과거를 움켜쥐고는 그것으로 예수님을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그분에 대해서 우월감을 느끼려고 시도하면서 그분의 진정한 사명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신앙인들은 과연 에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그분을 외적으로 소유하고 있을 뿐일까요?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이에게 존경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예수님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존경을 얻고자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것으로 존경을 얻으려 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되어있는 것으로 존경을 얻으려 할까요?
댓글
저에게 이런 것들을 안주심에 감사드리게 됩니다!
성녀 대 데레사의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가 진리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지금 현재의 모습
진심으로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