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뼈와 각 장기의 기능, 세포 조직과 호르몬 작용 등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몸을 하나의 '대상'으로 살펴서 그 구성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다른 한 편, 인간의 행동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문화활동과 종교활동 등으로 인간이 구체적으로 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합니다. 교회를 1차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교회의 건축물과 제도, 법률 등을 바탕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그것이 교회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주일 미사를 빠지면 어떤 법령에 어떻게 저촉되어 성사를 어떻게 보면 되는건지, 우리 성당에 당장 필요한 '공간'은 무엇이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바꿀 것이며 새로운 '건물'은 어떤게 필요한지와 같은 요소들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이들은 교회의 1차적인 외적 면모를 바라보고 걱정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걱정이 전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아기가 태어나면 당연히 그 아기가 무럭무럭 잘 자라도록 알맞은 영양분을 주어야 하고 또 근육이 형성되도록 운동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성장의 의무가 끝나는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사실 이 첫째 단계의 성장보다는 둘째 단계의 성장, 즉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하는가를 좀 더 중점적으로 살피고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비를 맞으면서 미사를 드려야 하는 고민을 하는 본당은 없습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기본'을 갖춘 본당들이 즐비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너무나 피상적이고 구태의연한 방식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있습니다. 늘 하는 행사, 작년에 했던 일로 나날이 반복되기만 하는 교회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직도 아이적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이상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는 각종 본당 신심 활동은 이제는 '선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친목모임으로 전락해 버렸고 구성원 간의 충돌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소모적인 모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전쟁에 임하는 사람이 자신의 밥을 냄비에 담아 먹든, 밥그릇에 담아 먹든 큰 상관을 하지 않듯이 우리에게 보다 시급한 과제, 핵심적인 과제가 있으면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미미한 요소들은 덜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정말 시급한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자녀들은 왜 자신에게 원하는 옷을 사다주지 않느냐며 부모에게 원망을 품게 마련입니다.
지금의 교회, 지금의 한국 교회는 바로 이러한 뚜렷한 방향성과 목적성을 상실한 상태로 남아 있는 자원을 갉아먹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나마 열심한 사람은 끝까지 남아서 버텨보려고 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패러다임에 남은 힘까지 쥐어짜내서 일을 하다가 결국 힘을 다 소진하고 제풀에 떨어져 나가 버리고 맙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현재'라는 시간이 남아 있는 동안 절대로 늦은 게 아닙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우리의 핵심 사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과 함께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안전을 추구해서 아무것도 안하기보다는 색다른 길을 모색하고 실천해보고 실패하고 수정해 나가는 게 보다 역동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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