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은 피세정념(避世靜念) 또는 피속추정(避俗追靜)의 준말로 세속을 떠나 고요함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저도 이번 한 주간 '피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본당 신부에게는 피정이라는 것도 사치인 것 같습니다. 들어간 바로 그 날에 연락을 받았고 한 신자분의 선종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 짐을 꾸려 본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흙과 뒤섞어 놓은 물이 고요함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영혼이 고요할 때에 비로소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무심코 지나치고 간과하고 있었던 마음 속의 어두움이 보이기도 하고 또 잊고 있었던 방향이 보다 뚜렷해지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 고요함을 스스로 없애 버리는 데에 선수들입니다. 현대인은 꽉꽉 채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현란한 악보의 오케스트라도 쉼표가 있어서 그 본래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인생이라는 악보를 온갖 음표로 가득 채우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사제입니다. 그리고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입니다. 그리고 사제는 또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양떼를 돌보고 이리떼를 막아야 합니다. 고요함 가운데 머무르게 되면 이러한 사명이 더욱 뚜렷이 보이게 됩니다.
아무거나 집어먹는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먹어야 하며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가르쳐야 하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누가 진정으로 하느님에게 관심이 있고 그분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아내어서 그를 도와 주어야 하고 반대로 하느님에게는 전혀 관심없고 다른 욕망과 욕구로 다가선 이들을 가로막아야 합니다.
초전성당이라는 곳은 언뜻 외견적으로는 굉장히 고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보게 되면 여러가지 면에서 엄청 시끄러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끄러움 속에서 고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사제가 필요합니다. 어디로 갈지 알고 그 곳을 향해서 꾸준히 신자들을 인도하는 사제가 필요합니다.
이 거룩한 사명에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번 피정 중에 만난 성무일도 시편 기도입니다.
"모두 다 탈선하여 악하게 되었으니 선을 할 사람이 없도다 하나도 없도다.
떡 먹듯 내 백성을 집어삼키는 자들 주님을 부르지 아니한 자들,
죄악을 범하는 그들 모두가 끝내 제 죄를 짐작 못하랴.
무서울 것 없는 데서 저들은 무서워 떨었으니,
너를 포위하던 저들의 뼈를 하느님이 흩으신 때문이로다.
저들은 부끄럼을 당하고 말았으니, 하느님이 저버리신 때문이로다."
(시편 52 중에서)
아멘.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