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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앞에서 선한 사람




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는 축에 올려놓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사람은 흔히 손가락질 당하고 지탄받으며 불명예를 끌어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스스로의 평가가 '선하게' 내려지기를 기대합니다.


문제는 그 평가의 기준점입니다. 사람들이 '선하게 보이기'를 기대하는 대상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평가는 외적 기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내면으로는 전혀 선하지 않아도 겉으로 짐짓 선한 척을 한다면 얼마든지 사람들 사이의 평가에서 '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걸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이라도 기도 생활에 열심인 척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의 외적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에 신앙에 열심한 신앙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본 뜻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시키지 않더라도 성경을 베껴 써서 주교님의 표창장을 받은 사람이라면 상당한 수준의 신앙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함이라는 기준은 단순히 외적 지표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실질적인 선함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추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요한 5,41-42)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의미의 선함이라는 것은 외적 지표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어떤 의도를 품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 사이에서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항상 하느님의 참된 뜻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늘 추구하는 것을 실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이기성을 바탕으로 겉꾸며진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이기적 선택의 순간에 하느님보다 스스로의 이득을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세상은 혼탁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선인지 무엇이 어둠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지름길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막연히 다른 이에게 좋아 보이는 무언가를 뒤따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번듯한 대학에도 들어가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그렇게 해야 다른 이들의 '평균적' 수준에 맞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느님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분의 시선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선해질 수 있고 또 선한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겉꾸민 위선을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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