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
“사랑을 거부하는 이들”
오늘 2독서는 사랑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용하는지 우리에게 전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러나 이어서 복음에 예수님의 현실적 처지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앞서 말한 모든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시는 것이분명한 예수님은, 정작 현실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는 ‘화가잔뜩 났다’고 표현하며 심지어는 살인의 시도까지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서 그분을 떨어뜨리려고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분은 유유자적하게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뒤에 그들을 떠나 버립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부족했던 걸까요? 그럴리는 없습니다. 행여라도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그분이 성부 성자 성령의 한 분으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가장 완전한 사랑을 하시는분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분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이에게는 소용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고 자신의 위신을챙기는 것이 목적인 사람 앞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챙기는 것이 목적인 예언자 따위는 소용없는 법입니다. 자신의 악을 완수하려는 이들에게 선을 가르치는 예수님은 성가심이고 걸리적거리는 돌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벼랑 끝에 밀어 치워 버려야 하는 무언가입니다.
그래서 1독서에는 예언자가 용기를 갖게 하는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있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숙명은 하느님의 뜻에 반대하는 이들과의 충돌입니다. 이건 피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 예언자의 뒤를 받쳐 주기에 예언자는 용기있게 자신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저 나약하고 유약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사람들이 하려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너를 사랑하니까 우리는 비록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얼마든지 성관계를 할 수 있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내가 너에게권하는 것은 심지어 마약이라도 받아들여야 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니가 너의 삶을 어떤 식으로 망가뜨려도 나는 너를지지해 주겠어… 이러한 식의 행동은 오히려 사랑에 반대되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거룩한 하느님의뜻 안에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밝히고 그 길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살아가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강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무쇠보다도 단단한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 안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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