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피 검사중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2디모 4,6-7)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상복부에 통증이 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일찌기 급성 간염을 앓았던 터라 이번에는 지체하지 않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추천해서 처음 간 병원은 그닥 좋지는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저 간단한 진료를 하고는 진통제를 내주고 내일 초음파를 찍어 보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병원은 영세한 곳이어서 초음파 기계 하나 없었습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인터넷을 검색해서 그나마 가장 신뢰할 만한 병원을 찾아 보았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볼리비아의 추기경님이 입원해 계시던 병원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갔지요.

애써 태연한 척
다시 병원 의사를 만나고 작년의 병력과 지금의 병세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의사는 이곳 저곳 누르고 저에게 통증이 느껴지는지를 물어보고 혓바닥의 색깔도 확인하고는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고 결과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좋은 병원이었기에 다행히 초음파 기계도 있었고, 검사실도 있었습니다. 피를 뽑고 초음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다시 의사를 만났습니다.

‘담낭에 담석이 좀 있습니다.’
‘그거 혹시 연말까지 기다리면 안될까요?’
‘담석의 크기가 크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담석의 크기가 작아서 움직여서 관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담즙이 역류해서 상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주 정도는 쉴 수 있겠지만 그 뒤에는 수술을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붓기를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공동체 형제들과 신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물론 한국의 주교님에게도 편지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교님으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돌아오라’는 말씀이었지요. 그래서 돌아갈 작정입니다.

초음파 검사중
바오로 사도의 디모테오서는 ‘지상의 사명’을 두고 적은 글입니다. 즉 지상의 사명을 다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준비를 갖춘 사도의 글이지요. 물론 저도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돌아가겠지요. 하지만 일단은 적어도 ‘볼리비아의 사명’은 끝난 것 같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했고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한국에서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이지요.

책에도 ‘단원’이 있는 것처럼 삶에도 ‘단원’이 있습니다. 저의 ‘볼리비아’라는 8년간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는 셈이지요. 물론 끝은 아닙니다. 이제는 ‘돌아온 한국’이라는 단원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피를 뽑았는데 간호사가 병을 떨어뜨려 깨었습니다. 다시 뽑아야 했어요.
참으로 열심히 일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느님은 저에게 부족한 것 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특히 가진 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행복한 것은 소유한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배웠지요.

동네 사람들에게서 문자와 전화가 많이 옵니다. 한 아주머니는 전화를 하다가 울먹이기까지 하더군요. 이제 며칠 남지 않았기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안정’이라는 이유로 가능하면 주말에 보자고 미루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푹 쉬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정리할 물건들은 이미 정리했고 인수인계도 끝내었습니다. 짐가방은 두 개 뿐입니다. 그마저도 하나면 충분할 걸 사람들이 이런 저런 걸 챙겨 가라고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더 구했습니다.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남은 미련이 하나도 없네요. 한국에 병원 예약은 미리 다 잡아 두었고 이번 주일 미사를 마지막으로 하고 떠날 예정입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하느님으로 인해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지요.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댓글

장순용 요셉님의 메시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긴 비행시간 조심하시고 고국에 돌아 오셔서 빠른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장순용 요셉님의 메시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긴 비행시간 조심하시고 고국에 돌아 오셔서 빠른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Unknown님의 메시지…
수고하셨습니다.신부님!
귀국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한국에서 수술 성공적으로 마치고 빨리 쾌유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Unknown님의 메시지…
언제나 그분께서 함께 하시기에 신부님 걱정 않할께요...

지금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늘 보기 좋았습니다.
신부님같은 사제가 계셔 다행입니다.
신부님 덕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Unknown님의 메시지…
언제나 그분께서 함께 하시기에 신부님 걱정 않할께요...

지금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늘 보기 좋았습니다.
신부님같은 사제가 계셔 다행입니다.
신부님 덕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Unknown님의 메시지…
신부님은 이루 말할수 없겠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볼리비아 가족들이 많이 서운하겠습니다...ㅠ
하지만 건강이 우선이니까 수술도 잘 되고 건강을 되찾는게 우선입니다...
그 동안 볼리비아현지에서 사목하시면서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Annita님의 메시지…
건강 조심 하세요.
빨리 가서 치료 하세요
Annita님의 메시지…
건강 조심 하세요.
빨리 가서 치료 하세요
Unknown님의 메시지…
신부님. 돌아오셔서 수술하시고 회복하셔서 계속 저희 양들에게 양식을 주시어요. 그러니 몸을 아끼시고 잘 드시기를 기도합니다.
Unknown님의 메시지…
신부님. 돌아오셔서 수술하시고 회복하셔서 계속 저희 양들에게 양식을 주시어요. 그러니 몸을 아끼시고 잘 드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성체를 모시는 방법

-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준주성범

준주성범 라틴어로 씌어진 15세기의 신심서(信心書). 저자는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로 알려져 있다. 모두 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편의 제목은 `영적 생활에 유익한 훈계'(Admonitiones ad spritualem vitam utiles), 2편의 제목은 `내적 생활을 지도하는 훈계'(Admonitiones ad interna trahentes), 3편의 제목은 `내적 위안을 얻는 법'(Liber internae consolationis), 4편의 제목은 `성체성사에 대한 훈계'(Devota exhortatio ad sacram communionem)이며, 1,2편은 주로 묵상과 기도로 이루어져 있고, 3,4편은 대화(對話)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인 생활의 기본원리들을 명백히 밝혀 주는 영신지도서로서 교회 신심에 많은 영향을 주어 일찍부터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냐시오(Ignatius de Royola)의 《영신수련》에 이용되었고, 또 17세기에 일어난 프로테스탄트의 경건주의(敬虔主義, pietismus)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활동하던 서양 선교사들이 한역(漢譯)한 《경세금서》(經世金書), 《준주성범》이 전해져 두 책 모두 한글로 번역 필사되었고, 1938년 연길교구의 차일라이스(V. Zeileis, 徐) 신부가 라틴어 원본을 번역한 《준주성범》이 간행되었으며 그 뒤 1954년 윤을수(尹乙洙) 신부가 새로 번역한 《준주성범》이 경향잡지사에서 간행되어 현재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성서 다음 많이 읽히는 책이다. 제1편 영적생활에 대한 유익한 훈계 제1장 그리스도를 본받음과 세상의 모든 헛된 것을 업신여김 1.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 (요한 8,12) 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훈계하시는 말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