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한 형제는 자기가 고귀해졌음을 자랑하고, 부자는 자기가 비천해졌음을 자랑하십시오.
고귀함과 비천함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깨끗하고 깔끔한 환경에 사는 것, 즉 부유하고 최신 기술을 향유하는 것을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 외적 재물의 양보다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고귀함을 가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많이 깨어 있는가를 바탕으로 고귀함을 가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다 다른 이유로 그 고귀함과 비천함을 바라보는 것은 의미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참된 고귀함과 비천함에 대한 올바른 분별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입니다.
사람이 고귀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만이 진정으로 고귀한 분이고 그분을 더 많이 담아낼 수 있을 때에 사람은 고귀해지는 것이지요. 반대로 그분에게서 멀어지는 이들은 비천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비천한 형제는 자신이 고귀해졌음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지닌 신앙이 우리의 외적 가난을 참된 고귀함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가난하다고, 돈이 없다고 고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얻게 된 가난을 얼마나 내적으로 진실된 수단으로 수용하는지가 우리의 고귀함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됩니다. 우리가 내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난은 도리어 우리의 증오와 탐욕을 부추기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참된 신앙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가난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수용하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탁하게 되는 훌륭한 수단이 됩니다.
반대로 부자는 신앙이 없을 때에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돈을 더 벌어 들이려고 하지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닌 것이 많을 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의 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그만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되니까요.
그래서 부자는 신앙을 통해서 자신의 비천함을 올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자리잡게 되면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만 스쳐 지나가는 것이고 우리는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서 그것을 잠시 소유할 뿐인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물질을 숭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그 금송아지에 상응하는 세상의 물질들을 숭배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회복하고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자신이 고귀해졌음을 또는 비천해짐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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