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높은 위치의 이들을 시험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유치원생이 대학생의 학력을 시험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반대로 대학생은 유치원생이 얼마나 성장해 있는지 언제든지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시험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맞는데 하느님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바로잡혀야 하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돌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우리의 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서로 불평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머리의 역할을 하고 손은 손의 역할을 발은 발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약한 부위일수록 더욱 조심히 다루고 강한 부위는 밖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또 어느 부위든지 심각한 상처가 나면 다른 일을 다 멈추고 그 곳을 먼저 추스르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일을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지구는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많은 것들을 무너뜨려 놓았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멈출 줄 모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그런 영적 사정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마리아의 사건을 알면서 '남몰래 조용히 파혼'하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파혼은 필요한 조치였지만 마리아가 사람들의 시선에 뭇매를 맞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이런 요셉의 마음을 알고 그에게 천사를 보내어 그의 마음을 바로잡으십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미흡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성가시게 하고 시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꾸로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치 않는 사건을 겪게 하시고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인내로이 견뎌낸다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빛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이겼습니다. 어둠 속에서 남몰래 말해진 것들이 환한 빛 속에서 드러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 악인들은 그에 상응하는 어둠의 결과를 맞이하고 빛의 자녀들은 기쁨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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