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톨릭 교회를 '계시종교'라고 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이 종교가 자연적인 인간의 초월적 본성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감추어진 것의 열어보임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에 없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욕구와 자기 계발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공통되는 욕구입니다. 또 초월성을 지향하는 것조차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적인 욕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사도신경 안에서 전하는 가르침들은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것과는 사실 상관 없는 내용들입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르는 내용들입니다. 그 가운데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의로운 이가 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 당해야 하는지, 또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말은 무엇인지, 이러한 내용들은 누군가 실제로 겪은 일을 올바로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의 생각 속에서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이민족들에게 계시의 빛이 됩니다. 몰랐던 것들을 받아들이고 숙고하게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단'을 내리게 만듭니다.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단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은 누구에게나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방 민족에게는 그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하게끔 하고 또 이미 신앙의 노선 안에서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꾸준하고 충실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합니다.
시메온이 봉헌된 아기를 두고 한 말 속에는 그의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시메온은 이를 두고 '계시의 빛'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사람들에게는 어떨까요? 그것은 코린토 1서 1장 23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에게 신앙은 그저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결단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계시의 빛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단순히 어리석음으로 치부됩니다. 같은 대상을 가운데 두고 내면의 상태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단순히 계시를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고 거기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거듭난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곧 영광입니다. 마치 유명한 연예인과 만나고 그들과 사진을 찍으면 세속 사람들은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속에 영광을 느낍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마침내 순교라는 것, 즉 신앙으로 인해서 우리가 세상의 중요한 것을 상실하는 것조차 영광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 역시 그 반대편이 존재합니다. 앞서와 같은 성경 구절 안에서 '유다인들'로 표현되는 선민 의식에 빠진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자신들의 교만과 아집을 고발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이들은 율법에 사로잡힌 백성들로서 자신들이야말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정작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 걸려 넘어지는 이들입니다.
이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적 가르침 앞에 계시의 빛을 얻고 영광을 느끼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어리석어 보이고 자꾸만 내가 실제 살아가는 삶 안에서 나를 성가시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느껴질까요?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나의 신앙의 본질이 놓여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이들이 골고루 뒤섞여 있습니다. (비율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적은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외아들은 반대받는 표징이 될 운명에 처해 있었고 그분의 어머니이신 거룩하신 동정 성모 마리아의 영혼은 칼에 꿰찔리는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신앙의 본질을 올바로 수용하지 못한 이들에 의해서 자행되기도 합니다.
항상 기준이 서고 나면 그 기준을 두고 방향이 생깁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그분을 기준으로 해서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1요한 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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