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철은 하느님께서 정하시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다른 말로 우리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포도는 아무때나 수확 하지는 않습니다. 익어갈 때 수확을 합니다. 그래서 포도가 익는다는 의미를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다리는 포도는 영혼의 포도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에 향긋한 과육이 가득할 때, 즉 여러가지 영적 가치가 들어차 있을 때에 추수의 시기가 다가오는 법입니다. 그 가치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세 가지는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적 가치들이 가득찬 사람은 십자가의 친구로 살아갑니다. 그는 부활을 기다리면서 일상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포도가 썩어도 농부는 일찌감치 거두어 들입니다. 영혼은 언제 썩어들어가기 시작할까요? 그것은 그릇된 가치들이 가득할 때입니다. 영혼에 누룩이 끼인다고 표현해도 되고 세속성이 가득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껍질은 멀쩡한데 속부터 썩는 과일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외적 틀은 유지되고 있으나 신앙의 본질이 훼손되어 가는 이도 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바로 이런 케이스입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외적 신앙 생활에 몸담고 있었지만 그들이 내는 '소출'은 없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향기로이 드려질 진정한 결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는 화가 납니다. 사실 누군가 반응하는 것은 무언가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쥐고 제멋대로 흔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고 싶어했고 하느님의 나라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했지만 그들은 더욱 더 강한 조건으로 더욱 더 강한 율법으로 사람들을 옭아매어 그들이 원하는 것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을 것이고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포도 철에 수확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소출을 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썩어 들어가고 있을까요? 오늘 병자방문을 다녀오면서 만난 한 어르신의 아련한 눈길이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자길래 뭣도 모르고 따라 나섰지요. 헌데 와서 보니 병원이네요. 나를 여기다 버리고 가나 하고 배신감이 들더라구요. 하지만 이제는 여기 사람들하고 정도 들었고 익숙해졌습니다. 신부님 뵈니 좋네요. 마음이 든든합니다."
"네 어르신. 제가 다음달에 또 올께요. 건강하세요."
소출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영적으로 부족한 이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서 기쁨을 얻어내는 것, 그것이 소출입니다.
댓글
잊고 있었던 책갈피의 빳빳한 지폐를 발견한것 보다 더 좋네요.
"저도 마음이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