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제 뜻대로 되는 세상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들의 기반에는 내가 욕구하는 것이 펼쳐지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들이 잔뜩 있습니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돈을 벌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기 위한 미래의 요소까지 고려해서 돈을 벌고자 합니다. 힘든 공부를 하는 것도 힘든 노동을 하는 것도 모두 나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이루기 위해서 현재를 투자하는 셈입니다.
특히나 현대의 한국은 개개인의 자아실현, 욕구실현이 이상이 된 사회입니다. 그러다보니 세상 많은 것들이 개개인이 더 편하고 쉽게 느끼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 '종교'라는 것은 사실 그 근본 안에 전혀 다른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대자'에 대한 순종이라는 가치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버리고 절대자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이 너무나 싫게 됩니다. 이는 물질적인 풍요가 더 늘어갈수록 힘든 가치가 됩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곧 우리의 뜻을 더욱 편하게 이루어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세상에 일부러 타자의 뜻을 찾아서 고생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 우리 신앙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분은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세상을 제 뜻대로 휘두를 수 있었지만 '순종'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자진해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그냥 얻어지는 가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타인의 뜻에 나를 굽혀야 하는 것이 됩니다. 세상에 많은 힘든 일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내가 욕구하는 것을 굽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가치는 고난을 통해서만 그 실제를 알아볼 수 있고 키워 나갈 수 있는 가치가 됩니다.
우리가 따르는 신앙의 삶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보다 하느님께서 더 뛰어나시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즉 순종하는 삶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의 순종의 삶은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 줍니다.
댓글
지금 이대로 살다가는 그 결과가 비참해질것이 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을 가르치고, 올바른 길을 제시 합니다.
그러나, 더 쉽고 편한 길이 있는데 왜 바보처럼 답답하게만 살아야 하느냐고 말합니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내 방법대로 하겠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식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뜻 보다는, '내 뜻. 내 방법. 내 계획. 내 생각. 내 욕심..'
그저 "예!' 하고 대답만 하는 것이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 온통 나로 채워지고, 그것이 눈덩이 처럼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그런 나를 비우지 않고, 버리지 않고서는 온전한 순종도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지금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응답해 드리는 삶. 그 가치를 기억하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