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힘이 모이면 큰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힘의 내부 속성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기업은 '소비주체'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치를 봅니다. 그러나 소비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있으면 소송도 불사하면서 그의 권리를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정치권력은 '지지자'에게 충실합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흘리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간 정보를 바탕으로 지지자들이 즐기는 고착된 사고를 심어줄 수 있고 더 큰 지지를 이끌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이, 자기 편이 아닌 이, 또는 기본적인 생활에 충실하면서 그 밖의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에게는 적대감을 쉽게 드러냅니다.
연예계는 '팬층'에서 얻는 인기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면 아무리 자극적인 요소라도 기꺼이 실행하곤 합니다. 심지어는 비윤리적인 요소라도 사람들 사이에 이슈가 될 수 있으면 기꺼이 선을 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섹시한 의상을 입히고 야릇한 춤을 추게 만드는 건 기본이고 그 밖에도 이슈가 될 수 있는 일이면 기꺼이 실행하고 퍼뜨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별다른 관심을 쏟아주지 않는 이들은 연예인들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런 영적 전쟁 한가운데 놓여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은 이 가운데에서 당신을 찾는 이들을 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는 사람들의 힘이 따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그분에게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들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는 달리 이 사랑이라는 것은 특정 대상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힘의 논리'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얻어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사랑의 참된 방향은 세상의 힘과는 정반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드높은 권좌에 앉아 있으면서 낮은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기꺼이 그 자리를 포기하시고 내려오셨습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이들을 선별적으로 고르지만 하느님은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특징적으로 눈에 보일 수 밖에 없는 신앙의 고유한 요소는 바로 가장 낮은 이들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 있는 자들도 관심 두지 않고, 권력 있는 이들도 관심 두지 않고, 인기를 갈구하는 이들도 관심두지 않는 이들을 하느님은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의 돌봄을 받는 이들에게서는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근본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대상화하고 이용할 뿐이며 그 이용가치가 떨어질 때에는 가차없이 내던질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느님에게 다가설 줄 알아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이 진정한 의미의 '보살핌'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소비주체'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치를 봅니다. 그러나 소비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있으면 소송도 불사하면서 그의 권리를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정치권력은 '지지자'에게 충실합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흘리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간 정보를 바탕으로 지지자들이 즐기는 고착된 사고를 심어줄 수 있고 더 큰 지지를 이끌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이, 자기 편이 아닌 이, 또는 기본적인 생활에 충실하면서 그 밖의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에게는 적대감을 쉽게 드러냅니다.
연예계는 '팬층'에서 얻는 인기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면 아무리 자극적인 요소라도 기꺼이 실행하곤 합니다. 심지어는 비윤리적인 요소라도 사람들 사이에 이슈가 될 수 있으면 기꺼이 선을 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섹시한 의상을 입히고 야릇한 춤을 추게 만드는 건 기본이고 그 밖에도 이슈가 될 수 있는 일이면 기꺼이 실행하고 퍼뜨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별다른 관심을 쏟아주지 않는 이들은 연예인들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런 영적 전쟁 한가운데 놓여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은 이 가운데에서 당신을 찾는 이들을 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는 사람들의 힘이 따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그분에게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들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는 달리 이 사랑이라는 것은 특정 대상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힘의 논리'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얻어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사랑의 참된 방향은 세상의 힘과는 정반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드높은 권좌에 앉아 있으면서 낮은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기꺼이 그 자리를 포기하시고 내려오셨습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이들을 선별적으로 고르지만 하느님은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특징적으로 눈에 보일 수 밖에 없는 신앙의 고유한 요소는 바로 가장 낮은 이들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 있는 자들도 관심 두지 않고, 권력 있는 이들도 관심 두지 않고, 인기를 갈구하는 이들도 관심두지 않는 이들을 하느님은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의 돌봄을 받는 이들에게서는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근본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대상화하고 이용할 뿐이며 그 이용가치가 떨어질 때에는 가차없이 내던질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느님에게 다가설 줄 알아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이 진정한 의미의 '보살핌'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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