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2역대 24,19)
신앙은 사실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그 기본 구조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피조물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순응'하도록 창조되었고 자연의 질서에 따릅니다. 다만 인간은 그 내면 속에 더 귀한 것이 있어 보다 드높은 가치를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을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구조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그릇되이 사용함으로써 죄를 짓게 되고 세상에 복잡함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마치 원래 창조된 종이는 깨끗한데 그것을 구기고 찢으면 복잡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그 순수한 내면의 욕구 속에 하느님을 찾도록 되어 있는데 세상은 온갖 복잡한 요소로 인간의 내면을 찢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런 인간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예언자들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예언자들은 현재 진행중인 사람들의 내면의 혼란함을 거슬러 예언을 하도록 사명을 부여받은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달갑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 그들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흔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거스르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반갑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지고 그 말을 전하는 이들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듣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욕구하는 것에 상응하는 말들입니다. 돈을 더 벌게 해 주고, 성공하게 해 주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쥘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더 달갑게 들릴 뿐, 하느님을 알게 해 주고, 그분의 사랑을 깨닫도록 해 주고, 그것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들은 그저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 같은 말들로 들릴 뿐입니다.
그러니 신앙을 선포하는 이는 바로 그 선포의 내용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 앞에는 '환난'이 놓여 있고 그 환난은 자연스레 인내를, 수양을, 희망을 자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세상에서 더 나은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 안에서 누리게 되는 참된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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