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는 또래 집단에게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씁니다. 그래서 한때는 그 값비싼 패딩이 유행을 탄 것도 그것이 또래 집단에서 통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춘기 시절에는 친구가 중요하고 그 친구에게서 배척당하는 것은 부끄러움이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딘가로 이사를 가면서 전에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너무나 쉽게 멀어지고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은 다들 한 번씩 하는 체험일 것입니다. 물론 시골 지역에서는 그럴 일이 잘 없기에 더욱 과거에 고착화 되기도 합니다. 즉, 여전히 사춘기 시절의 집착을 안고 사는 어른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고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전에 소중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은 시대가 흐르면서 지나가게 됩니다. 지금도 삐삐를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소중히 여겨지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새로운 기기들이 등장해서 그 자리를 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변치 않는 가치, 그 가치의 주인이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그분을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서 멀어질 수 있고 가치는 변하는 것이 되지만 오직 한 분 하느님에게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이들이 참된 신앙인이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신앙 선조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니던 관직을 잃고 유배를 당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그들이 장사의 수단이 되니까 별의 별 공원을 다 만들어서 그들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현대에도 참된 신앙인은 존재하고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천더기 취급을 받습니다. 이 재빠르고 똑똑하게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신앙인들은 뭔가 어리석어 보이고 허튼 짓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사라는 것을 제 잇속만 챙기고 최소한의 시간만을 투자하는 것일 뿐, 성당에서 봉사를 왜 해야 하는지, 왜 엉뚱한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일은 세상을 똑똑히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로 취급 당합니다.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다행히 박해시대는 아니지만 박해가 멈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더욱 교묘하게 하느님의 자녀들을 박해합니다. 보다 음험하고 지속적으로 박해를 계속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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