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래를 할 때에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득이 되고 상대도 만족할 만한 적정선을 찾고자 합니다. 동업하는 사람들끼리 수익을 50대 50으로 나눌지, 60대 40으로 나눌지, 유산을 나누는 형제들끼리도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과연 하느님은 얼마에 만족하실까요? 무엇을 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성경에 나오듯이 십일조라고 해서 10분의 1이면 될까요? 아니면 우리 천주교는 아무래도 더 야박하니까 30분의 1 정도로 퉁칠까요?
사람들은 사실 어마어마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하느님과 우리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전권을 쥐고 계시고 우리는 그 피조물입니다. 무엇이 적정할까요? 답은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드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럼 우리가 모두 봉쇄 수도원이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제나, 평신도냐, 수도자냐 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성소의 차이일 뿐입니다. 본질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 생의 본질은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느님의 것을 우리가 빌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집사처럼 애시당초 집사가 다루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집사의 것이 아닌 셈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의 생명, 내 가족, 내 재산, 내가 지닌 모든 사회적 지위와 명예, 권력 모조리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원래 모두 하느님의 것 가운데 일부를 위탁받아 쓰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 마음으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일부를 하느님에게 줘서 그분을 일시적으로 만족하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원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하느님은 훗날 모든 것을 다시 되찾아 가실 것입니다.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죽고 난 뒤에 내가 남겨놓은 것이 내 자식들 중의 누구의 차지가 될 것인가? 그것 역시 어리석은 고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식들도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것을 또 남겨놓고 죽을 테니까요.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주변의 이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뿐입니다. 내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니 뜻하시는 대로 쓰시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지상에서의 이 작은 과업에 충실한 이들에게 하느님은 영원 안에서 많은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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