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서 내가 만나게 될 신자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본당에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 들, 결국 마지막 선택은 각자에게 달린 셈이다. 사제는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움을 줄 뿐이다. 하지만 결국 내 모든 일은 마치 '실패'처럼 드러나게 될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은 여전히 재물을 탐하고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리라. 하지만 하느님만이 아시는 때가 되면 내가 심어놓은 씨앗들이 싹이 터서 그들 마음 안에 뿌리 내리고 그들은 언젠가는 보다 참된 길을 찾아서 자신의 여정을 시작하리라.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크게 슬퍼할 일도, 또 크게 기뻐할 일도 없는 셈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종들이고 그저 해야할 일을 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신경쓸 수 있는 보다 본질적인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행보이다.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끊어 버려야 하고 무엇에 헌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할 수 있고 실천해 나갈 수 있다. 각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응답해야 한다. 사제는 더 사제 다워야 하고, 수도자는 더 수도자 다워야 하며,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성화'를 찾아야 한다. 육체의 고난은 쉬이 지나가 버리고 보다 신경써야 할 것은 마음의 진정한 평화이다. 폭풍우 속에서도 곤히 잠들어 계시는 주님의 마음처럼 우리 역시도 일상사의 온갖 풍파 중에서도 잠들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지긋지긋한 벗인 육신의 요구들을 어느 정도 끊었다 싶으면 그 다음에는 하느님의 시련이, 그리고는 악마들이 보다 본격적으로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 걸음마를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당할 공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여러분 스스로 훌러내려가는 셈이니 말이다.
오늘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면서 나는 걸어가야 한다. 언제나 내 목표를 뚜렷이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걸어야 한다. 비록 다리가 성하지 못해 뛰지는 못하지만 기어 가더라도 나는 내 목표를 향해서 오늘도 한 걸음 내딛을 셈이다. 행여 누군가 깨닫는 자가 있어, 이 여정에 동참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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