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공허함에 빠져 있게 되면 올바른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게 됩니다. 이는 마치 사탕을 더 먹고 싶어 안달이 난 어린이에게 식사를 하라고 초대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진리는 가까이 있으나 우리가 그 진리에 다가서지 않는 이상 우리를 밀고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의 올바른 선택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 정신에 자신을 내어맡기고 나서 '신앙'을 어떻게든 유지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 '피상성'에 젖어들게 됩니다. 즉 외적 껍데기로서의 신앙 생활을 하게 될 뿐 실속있는 신앙, 참된 신앙에 나아가지 못하는 찌뿌둥한 정신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지나치게 즐기는 사목자는 하느님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는 하지만 그에 온전히 몸담을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은 우리를 그릇됨에서 해방시키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론상의 진리'가 아닌 실천적인 진리로 우리를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진리는 나이 많은 어르신부터 이제 갓 지력이 깨어난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함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나 언어적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더라도 선한 것이 바람직하고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이 세속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썩어 들어가기 시작할 때에 이 기초적인 진리가 망각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이 요약한 모든 율법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이는 영원한 질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다가서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반대로 세속의 이끌림에 올바르게 저항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전혀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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