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을 치장하고 그것으로 관광 상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 자체가 그들, 즉 순교자와 예언자의 영성을 배우거나 살아있는 성령의 활동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을 추종하는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더 큰 건물, 더 큰 성지를 조성하고 더 많은 부를 끌어들이고 그것을 유지해야 하는 환경은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행동 자체가 예언자들을 거부하고 죽이는 활동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내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예언자가 활동한 시대에 살았더라면 그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요. 자신의 이익과 관계된 사소한 손해조차도 견뎌내지 못하는 그들이 예언자를 마주하게 된다면 얼마나 화를 낼 지는 뻔한 일입니다.
현대의 교회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화려한 건물에 감탄하고 값비싼 프로젝트에 환호하면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어가고 있습니다. 참된 신심은 겉꾸며진 활동들로 바뀌어 버리고 거창한 일들을 치루어 내었으니 자신들은 신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자부심을 가집니다.
단순히 성경을 많은 횟수로 읽어서 거룩해 질 것 같으면 성경을 교정한다고 수차례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가방끈이 짧아서 성경을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시골 촌로가 더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툭하면 박물관을 만들고 썩어 문드러질 것들을 집어 넣어 두고서는 마치 그것으로 당대에 살던 이들의 거룩함을 잡아 넣기라도 했다는 식의 태도가 바로 스스로가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사람들의 허영이 살아있는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참된 예언자는 묵묵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증언하고 그런 허황된 이들의 손에 조용히 죽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나라에서 그들은 환호 속에 들여높여질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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