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얻기는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저 그분을 '안다'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분을 알까요?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안다는 것은 다채로운 차원을 다룹니다. 우리는 숫자를 알 수도 있고 한 사람을 알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아는 것이지만 그 안다는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숫자를 아는 것, 정보를 아는 것, 새로운 소식을 듣고 아는 것은 모두 피상적인 앎입니다. 그것은 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기억이 필요할 뿐입니다. 듣고 외워두면 끝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에 우리는 그를 피상적으로만 안다는 의미로 쓰면 안 됩니다. 사람에 대한 앎은 친교가 필수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에 그냥 유명 연예인을 TV에서 본 적이 있어서 그 사람이 기억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 그 사람을 올바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 사람과 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구원의 문제로 돌아와 봅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압니까? 정보로는 충분히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분과 친합니까? 우리는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저를 4년 동안이나 지켜봐 왔으니 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제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복음의 열정을 나눌 사람을 골라야 할 때에 누구를 고를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니, 애시당초 그런 열정을 나눌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막걸리를 같이 한 잔 마시고 싶다면 누구를 부를지, 이 동네에 유력 인사를 소개받으려면 누구를 찾아갈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구원에 대한 것을 진정으로 함께 나눌 영적 친구를 찾으라면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분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의도하고 어떤 길을 걷고자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고 그 길을 함께 따라 나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을 빌자면 다음과 같은 일들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하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걷겠다는 의미입니다. 세속적인 관심사에 푹 빠져 살면서 주일에 잠깐 미사에 나오는 것으로 그분을 안다고 자부하고 있다가 훗날 하느님에게 '나는 너희가 누군지 모른다 내게서 물러가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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