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설명하는 믿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우리의 몸을 떠올려야 합니다.
먼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은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의 몸이 아무리 가장 작은 지체라도 그 지체의 끝단에서 느끼는 고통에 나의 모든 존재가 반응하게 됩니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진정으로 붙어 있으면 하느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돌보십니다.
다음으로 쓸모없는 종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과 연계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 언제 우리에게 반기를 든 적이 있습니까? 가장 힘든 일, 가장 더러운 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의 몸이고 그 다음 일을 바로 하기 위해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지체입니다. 우리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지체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순명이며 이런 순명을 한다고 해서 다른 특별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진정으로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지체가 됩니다.
사도들의 오류는 '믿음'을 무언가 마치 자신들에게 더해지는 것인 양 착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돈을 다루듯이 예수님에게 믿음이 100 정도 있고 우리가 10이 있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5를 주면 우리가 15가 되고 예수님이 95가 되는 식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예수님에게 믿음이 100이 있을 때에 내가 아무것도 없더라도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그분의 100의 믿음이 곧 나의 믿음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에게 순명하기보다 내가 중심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참으로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하지만 한번 제대로 믿기 시작하면 바로 이해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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