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세상 안에서 집을 지으려면 건축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벽돌을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벽돌을 쌓고 그 사이에 시멘트를 바르고 하면서 벽을 쌓아올려 갈 것입니다. 벽돌의 재료도 여러가지가 있으니 싸구려 재료부터 고급 재료들이 있지요. 그런 재료의 차이에 따라서 건축물의 완성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성적인 면에서도 건축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보들을 접하고 그것들을 외우고 이해하면서 우리 내면에 지서의 건축물을 쌓아올릴 수 있지요. 얼마나 다양하고 고급 정보들을 습득하느냐에 따라서 지성의 건축물의 종류도 더욱 튼튼해지고 고급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어떻게 건물이 지어질까요? 영혼과 관계되는 고유한 영역은 과연 무엇일까요? 영적인 면에서는 ‘사랑’이 그 재료가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표현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순수 그 자체로 남아있는 경우는 잘 없고 우리의 이기적인 욕구들과 많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할 때에 정말 그 여인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의 결심을 다지기보다 그 여인의 외적 조건들이 마음에 들어서 사랑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합니다. 그녀의 외적 아름다움과 그녀의 성격과 같은 것이 내 마음에 드는 것이지요.
이 사랑의 근본 안에는 ‘의지’라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의지가 포함되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이끌리는 매력이 아니라 ‘결심’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순수해지려면 사랑 앞에 ‘장애’가 있는데도 사랑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할 때에 그 사랑의 순수성이 더 짙어지는 것이지요. 누구든지 의인은 사랑하려고 하겠지만 그리고 의인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내어 바치려고 하겠지만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려고 드는 경우는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당신의 사랑의 정점을 드러내신 것이지요.
따라서 영혼의 건축물을 짓는 데에는 우리의 ‘의지’ 즉 ‘결심’이 중요하게 됩니다. 우리는 결심을 통해서 영적인 요소들을 습득하게 되고 쌓아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결심은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첫 결심은 ‘회개’라고 부르는 것이지만 그 첫 회개 이후에도 우리는 숱한 여러번의 결심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심, 의지의 정립은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어제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오늘 사랑스러워 보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새로운 결심으로 영적 건축재료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돈이 없어서 사랑을 못한다거나 지식이 부족해서 사랑을 못하는 법은 없습니다. 사랑은 ‘의지’가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결심을 한다면 내 생명이라도 내어줄 수 있을 테니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