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에서 세족례를 할 때에 저는 세족례 당일에 사람들을 직접 골랐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나왔고 저는 그들의 투박하고 거친 발, 그리고 말 그대로 먼지가 잔뜩 묻은 발을 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맞이하는 첫 세족례는 이상한 사전 조건들이 자꾸만 붙었습니다. 대상자를 먼저 선별해서 발을 미리 씻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 사람마다 수건은 다르게 써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일찍이 볼리비아에서 하고 있던 걱정 아닌 걱정이었지요. 바로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한국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해 오던 관습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고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뭔가 뒤바뀌면 너무나도 어색해 하고 싫어합니다.
세족례는 제자들의 먼지 묻은 더러운 발을 예수님께서 직접 씻으시면서 그 의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더러워서 그 누구도 함부로 만지지 않으려는 발을 씻는 것이지요. 이미 집에서부터 잘 씻겨지고 그날 새로 산 양말을 곱게 신은 발에 물 좀 뭍히고 깨끗하게 세탁된 수건으로 닦는 식으로는 세족례의 본질이 너무나 무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한국법을 따라야 하겠지요.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사제에 대한 지나친 존경심에 어떻게든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요.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작은 예식 하나 안에 깃든 수많은 찌든 관습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관습이 진정 사랑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지요.
세족례는 겸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기는 법을 가르쳐주는 예수님의 소중한 가르침이지요. 헌데 세족례가 그것을 받은 사람을 겸손하고 겸허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리어 드높고 영예롭게 만들어 버리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만의 착각이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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